신호탄 터뜨리고 온몸으로 ‘88세 역주행차’ 막은 순찰대(인터뷰)

국민일보

신호탄 터뜨리고 온몸으로 ‘88세 역주행차’ 막은 순찰대(인터뷰)

이후산 경위 “위험한 행동…그때는 막자는 생각뿐”

입력 2019-06-30 05:00
전북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제9지구대 이후산(52) 경위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차가 있어요” 지난 22일 밤이었다. 전북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제9지구대에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속도로에서 누군가 역주행하고 있다는 제보자의 신고 전화였다. 당장 현장으로 출동해 차량을 막아야 했다. 마주 오는 차와 충돌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밤 11시39분. 덕유산 톨게이트에서 단속 활동 중이던 이후산(52) 경위가 곧장 현장으로 출동했다. 급히 차에 올라탄 이 경위는 함께 있던 동료와 여러 가능성을 따져가며 역주행 차량을 막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이날 따라 도로에는 유난히 대형 화물차가 많아 보였다. 그 사이 역주행을 신고하는 전화는 12차례나 더 걸려왔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때 제9지구대에서 무전이 왔다. 서상IC에서 육십령 터널로 가는 길목에서 순찰차와 역주행 차량이 가까워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경위는 서상IC에서 서상졸음쉼터의 중간 지점에 정차했다. 차를 돌릴 수 있는 직선 차로에 내리막길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역주행 차량을 세우기 적합한 곳이라고 판단했다.

이 경위는 역주행 차량이 오기 전 불꽃 신호봉 2개를 챙겨 반대편 도로로 건너갔다. 함께 갔던 동료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곡IC에서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멀리서 역주행 차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경위는 불꽃 신호탄을 터뜨린 후 온몸으로 신호를 보내며 역주행 차량을 멈춰 세웠다. 그때 시간이 자정을 넘겨 23일 오전 0시 1분. 가까스로 달려오던 차를 세운 이 경위는 해당 차량이 정상 진행하던 차량과 부딪힐 수도 있다는 판단에 1, 2차로를 임시 폐쇄했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에서 서상나들목까지 약 20㎞를 역주행한 인물은 88세 노인 A씨였다. A씨는 이 경위에게 “밤길이 어두워 휴게소 출구를 착각했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놀란 A씨를 진정시키며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다. 이후 이 경위는 A씨의 차량을 갓길로 이동시켰다. 이때가 오전 0시 20분쯤이었다.

그러니까 이 경위가 역주행 신고를 받고 차를 세우기까지 20분, 상황을 마무리하기까지는 40분쯤이 걸렸다. 마치 5분처럼 정신 없이 흘러간 시간이었다.

이 경위는 26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마주 오는 차량과 충돌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다급했다”며 “역주행하는 차량을 멈춰 세우기 위해 도로에 서 있던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당시에는 차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밝혔다.

이 경위는 “우리의 일은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며 “우리 밖에 막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 운전자들은 다른 운전자들에 비해 인지 능력과 방향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불안할 때가 많다”며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고령 운전자 문제는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강태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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