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얼굴’을 바꾼 총기, AK47을 아시나요

국민일보

‘전쟁의 얼굴’을 바꾼 총기, AK47을 아시나요

[책과 길] AK47/ 래리 커해너 지음/ 유강은 옮김/ 이데아/ 392쪽/ 2만원

입력 2019-07-10 13:12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 세워진 동상. 독재자를 몰아낸 게릴라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동상은 바나나 모양의 탄창이 끼워진 AK47을 들고 있다. ⓒJames Lerager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는 2004년 ‘세계를 바꾼 50가지 제품’을 선정했다. “지난 반세기에 등장한 가장 혁신적인 소비재” 50개를 추려 순위를 매긴 기사였다. 애플이 만든 매킨토시 데스크톱 컴퓨터가 정상에 랭크됐고, 경구 피임약과 소니의 VCR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4위는 뭐였을까. 바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총 ‘AK47’이었다.

가장 유명한 소총이라지만 ‘밀덕(밀리터리 덕후)’이거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1인칭 슈팅 게임 마니아가 아니라면 AK47은 처음 듣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총은 20세기에 발발한 거의 모든 “전쟁의 얼굴”을 바꿔놓았다. 책에 실린 몇몇 문구만 추려서 소개하자면 이렇다.

“반세기 동안 그토록 많은 목숨을 앗아간 무기는 역사상 없었다” “몇몇 나라에서 국기와 화폐에 그려져 있는 무기다” “세계의 현대사를 변모시켰다” “AK47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중동에서 테러 공격이 벌어졌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은행 강도가 빈발했다”….

그렇다면 AK47은 어떤 총이기에 이토록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됐을까. ‘AK47’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래리 커해너(70). 그는 AK47의 총구를 통해 들여다본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하나씩 그려내는데 인상적인 대목이 수두룩하다.

일단 AK47의 탄생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1947년 발명된 이 총기의 이름은 ‘아브토마트 칼라시니코프(Avtomat Kalashnikov)’의 줄임말이다. ‘아브토마트’는 자동소총을, 칼라시니코프는 총을 만든 소련의 무기 설계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1919~2013)를 가리킨다. 2차대전 당시 전차병으로 참전한 칼라시니코브는 독일의 돌격소총 같은 무기가 절실하다고 생각해 AK47을 만들었고, 소련은 49년 AK47을 보병의 기본 화기로 채택했다.

AK47을 발명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이데아 제공


AK47은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소련은 동맹국이나 제3세계의 환심을 사려고 이 총의 특허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설계도도 무상으로 배포했다. 복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났을 건 불문가지다. 그렇게 세계 이곳저곳에서 만들어진 AK47은 무려 9000만~1억정. 이 총은 몇몇 국가에서 닭 한 마리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해서 ‘치킨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저렴한 짝퉁 제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AK47의 인기를 설명할 순 없다. 이 총은 조작이 편리하고 살상력이 뛰어났다. 반동이 강해 연속 사격을 하면 정확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대단한 내구성이 이런 문제를 상쇄시켰다. “진창에 굴러도 흙만 툭툭 털어내면 곧바로 발사 가능한” 게 AK47이었다. 훈련도, 수리도, 관리도 필요 없는 값싼 명품이었다고나 할까.

일급의 최신 무기로 무장한 미군들은 투박하기 짝이 없는 AK47에 속수무책 당하곤 했다. AK47은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의 숨은 주인공이었다. 이라크전 당시 미군은 모래폭풍 탓에 총기가 고장나는 것을 막으려고 콘돔으로 총구를 감싸곤 했는데, AK47을 든 적군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베트남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베트남전쟁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된 미군의 표준 전투소총은 도입될 때부터 총알이 막히고 고장이 잦았다. 이런 문제들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사용하는 AK47이 밀림의 근접전에서는 M16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미군 병사가 많았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AK47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스토리다. 예컨대 소련이 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미국에 AK47 지원을 요청해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무자헤딘은 훗날 이 총을 알카에다에 전달했고, 알카에다는 다시 미국을 향해 AK47의 총구를 겨눴다. 그야말로 역설적인 상황이 간단없이 이어진 셈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엔 AK47이 만들어낸 만화경 같은 이야기가 빽빽하게 실려 있다.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에서 이 총은 “남자다움의 징표”였고 “반서구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반영웅이나 테러리스트, 악당을 보여주기 위해” AK47을 자주 등장시키고 있다.

특정 아이템이나 사건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풀어쓴 책이야 많지만 총 한 자루를 통해 이토록 흥미로운 스토리를 들려주는 작품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AK47의 전기(傳記)적인 사실만 전하고 끝나는 건 아니다. AK47은 매년 25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최고의 대량 살상무기다. 문제는 지구촌 곳곳에 널린 이 총기를 환수해 파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긴 번역가 유강은씨의 말처럼 AK47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쟁이 벌어지거나 치안이 약화되는 곳마다 역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어쩌면 세계 평화를 향한 진전의 첫걸음은 이 총의 확산을 막는 데서 시작될 수도 있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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