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직전인 거리가게들…시범사업부터 삐끗한 노점상 관리사업

국민일보

폭발 직전인 거리가게들…시범사업부터 삐끗한 노점상 관리사업

입력 2019-07-11 17:08 수정 2019-07-11 22:12
영등포구 관계자들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영등포역 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노점상을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충돌 없이 노점상을 철거해 주목을 받았던 서울 영등포역 앞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영등포 노점상 30여명이 ‘구청이 철거 전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지난달 말부터 농성에 나선 것이다. 영등포구가 약속했던 가게 위치를 유동 인구가 적은 곳으로 옮겼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영등포구는 ‘잠정안이 수정된 것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영등포 노점상이 소속된 대전국노점상연합은 다음 주 본격적인 시위에 나설 태세다.

서울시가 4년간 준비해 올해 야심차게 내놓은 ‘거리가게(노점상) 허가제’ 사업이 시행 6개월이 넘도록 겉돌고 있다. 노점상을 철거한 뒤 별도 부스를 설치해 관리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계획이지만, 철거한 노점상들과의 대립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첫 철거 공사가 진행된 영등포구의 사업은 미뤄졌고, 나머지 시범지역 4곳은 철거 계획조차 잡지 못했다.

11일 서울 영등포구에 따르면 6월 초 영중로(영등포역 삼거리~영등포 시장)에 가게 부스를 설치 완료하려 했던 공사 일정은 한 달 이상 미뤄지고 있다. 가게 부스 위치를 둘러싼 영등포 노점상과의 갈등이 오래 지속되면서다. 영등포구는 거리가게 설치 위치를 당초 검토했던 영등포역 근처 대신 영등포시장 사거리 주변으로 변경했다. 영등포시장 사거리는 영등포역 부근보다 유동인구가 절반 이상 적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철거 이후 영등포역 앞을 지금처럼 깨끗하게 비워달라는 주민 여론이 많아졌다. 잠정안은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며 계획 수정 이유를 말했다.

영등포 노점상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등포노점상연합회 대표 정모(60)씨는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영업 장소는 절대적이다. 철거 전 ‘상인들이 부스 설치를 반대하면 어떡하냐’고 했지만 구청 직원들이 걱정 말라고 했다”고 했다. 영등포역 앞에서 20년 이상 장사한 한모(75)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철거 안 하고 끝까지 싸웠을 것”이라며 “다른 노점상들도 볼 일 끝나자 입 싹 닦는 구청을 앞으로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했다.

나머지 시범사업 지역 4곳(종로구 중랑구 동대문구 관악구)은 철거 일정도 잡지 못했다. 서울시가 노점상, 전문가 등과 2013년부터 논의해 지난해 7월 내놓은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실제 적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노점상들이 가이드라인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노점상 재산기준, 면적 등을 하나하나 다시 협의해야 한다”며 “당초 하반기에는 공사를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구 관계자는 “철거 이후 갈등이 불거진 영등포구 때문에 구청에 대한 노점상들의 불신이 커져 대화가 더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으로 서울시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관계자는 “일부 노점상 의견만 듣고 합의된 거라고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때부터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며 “기준에 맞지 않아 퇴출된 노점상들에게 어떤 대안을 내놓을 건지 지속적으로 요구했는데, 이 부분이 전혀 반영돼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노점상과 정부 간 신뢰가 중요한 사업인데 첫 시범 지역에서 정책 신뢰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불가피한 상황이 있거나 못 지킬 시에는 반대 보상을 제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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