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력에 英대사 사임, 차기 英총리 후보 존슨 ‘역풍’

국민일보

트럼프 압력에 英대사 사임, 차기 英총리 후보 존슨 ‘역풍’

정당한 업무 수행한 자국 대사 보호 안한다는 비판 쇄도

입력 2019-07-11 18:14
차기 영국 총리 후보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혹평한 외교 문서 유출 파문으로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킴 대럭 주미 영국 대사가 사임 의사를 밝힌 가운데 영·미 정가에 불어닥친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특히 영국에서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외교부 장관의 태도를 놓고 집권 보수당 내 정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영국 외교부는 10일(현지시간) 대럭 대사가 영국 외교부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대럭 대사가 전날 보수당 대표 경선 TV 토론에서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존슨 전 장관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편을 들자 사임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날 존슨 전 장관은 총리로 선출될 경우 대럭 대사를 유임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계속 답변을 회피했다. 대신 누구를 주미대사로 임명할 것인지에 대해 “예단하지 않겠다”고 답변해 대럭 대사의 유임 가능성을 배제했음을 드러냈다. 테리사 메이 총리 내각은 물론 야당인 노동당 지도부도 대럭 대사의 정당한 공무수행을 지지한 것과 상반된다.

대럭 대사의 사임 표명 이후 영국에서는 존슨 전 장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가에서는 존슨 전 장관의 노골적인 친(親) 트럼프 행보에 분노하면서 차기 총리로서 존슨 전 장관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앨런 던컨 영국 외무부 차관은 “존슨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의 대사를 희생시켰다”면서 “차기 보수당 리더로서 그의 행동은 비열했다”고 비난했다. 이미 보수당 표심이 상당수 존슨에게 쏠려있는 만큼 지도부 경선의 판세를 바꾸기는 어려워보이지만 앞으로 존슨의 행보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사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주재국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지난 2010년 위키리크스가 미국의 외교기밀을 대량 유출했을 당시 보듯 미국 대사도 예외가 아니다. 전직 영국 외교관인 애덤 톰슨은 미 워싱턴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대럭 대사의 언급은 전적으로 예상됐던 것”이라면서 “워싱턴DC에 주재하는 대부분의 외교관들이 그것과 똑같은 내용을 썼다”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거친 반응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정부의 낮은 성숙도를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미 행정부에 대해 “서툴다” “무능하다” “불안정하다”고 진단한 보고서를 만든 대럭 대사를 강력 비난하는 한편 트위터를 통해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불신임 했다.

대럭 대사의 예기치 않은 사임으로 메이 총리는 주미 대사를 새로 임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존슨 전 장관 진영에선 메이 총리에게 “임기 종료 직전에 새 주미대사를 임명함으로써 후임 총리의 손을 묶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해 보수당 내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서도 대럭 대사의 사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CNN은 “동맹국 대사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첨하는 것만이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서 “누가 나라를 대표할지 결정할 특권은 주재국이 아닌 본국이 갖고 있는 것이 외교인데, 이번 일은 외교의 작동 자체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은 지저분한 외교적 조치이자 비우호적인 행동”이었다면서 “오히려 영국 대사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는 자국 내 외교가의 반응을 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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