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미술관으로 쳐들어온 안은미…신나긴 하지만 미술언어론 뭉툭 ”

국민일보

[손영옥의 지금 미술] “미술관으로 쳐들어온 안은미…신나긴 하지만 미술언어론 뭉툭 ”

29 (끝) 무용가 겸 안무가 안은미와 미술관 전시

입력 2019-07-15 16:22
요즘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전시가 별스럽다. 1층 전시장을 들어서면 무용 의상이 설치작품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투명 풍선이 뒹군다. 무대가 만들어져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엔 몸을 흔들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
'빡빡머리 무용가' 안은미씨가 지난 7월 2일 자신의 무용 인생 30년을 결산하며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미술관에서 갖고 있는 '안은미래전'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한창 관객몰이 중인 2층 전시 영국 팝아트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전과는 180도 다르다. 호크니 전이 회화가 벽에 걸려 있는 미술관 전시의 전형이라면 1층은 파격 그 자체다. 파격의 주인공은 미술가가 아닌 무용가이자 안무가다.

‘빡빡머리 무용수’ 안은미(56)가 미술관에 쳐 들어왔다. 7월 초 미술관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늘 그렇듯 형광색 줄무늬 원피스 차림. 며칠 전 기자간담회엔 애들이나 쓰는 조잡한 금관을 빡빡머리에 쓰고 나왔었다.

그를 만난 건 튀는 차림이나 무용의 세계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이번 전시가 무용인지, 미술인지가 헷갈렸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 날 그는 말했다. “여기 팻말에 ‘참여작가’라 돼 있지요? 근데 저, 무용가이자 안무가인데 말이죠.”(웃음)

전시는 그의 무용 인생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이름하여 ‘안은미래(Known Future)전’(9월 29일까지).

"무용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뻔한 30주년 행사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무대에서는 하루면 끝이지만 전시장은 30주년을 오래오래 기념할 수 있으니 좀 좋아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무대 위에 선보인 30년 인생을 족자처럼 펼쳐 보이고 싶어 미술관 몇 군데를 노크했었다고 전했다.

전시 속 미술적 요소를 찾아봤다. 의상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안은미가 디자인한 무용복들을 천장에 걸어놓았는데 마치 설치작품 같다. 라오미 작가는 안은미의 무용 인생을 전통 민화의 ‘평생도’ 형식을 빌려 벽화처럼 그려놓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콩쿠르 우승 장면, 이화여대 무용학과 재학시절의 공연, 미국 뉴욕대학원 유학 시절의 솔로 쇼, 대구시립무용단장 시절의 모습…. 평생에도 인생사가 펼쳐진다. 안무한 주요한 작품의 영상은 우물을 형상화한 흰 구조물 여섯 군데에 미디어아트 작품처럼 선보인다.
무용 인생 30년을 평생도 형식으로 그린 그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안은미씨. 최현규 기자

핵심은 무대다. 상식을 엎는다. 아래 객석에서 올려다보는 통상의 무대가 아니라 겨우 10㎝ 높이다. 관객은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것도 코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지켜본다. 개막일 그가 안무한 북한 춤 공연을 소개했던 무대에선 이날은 안은미컴퍼니 단원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안은미가 직접 하는 일반인 대상 춤 강습도 여기서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공연의 확장으로 다가온다. 무대 뒤 2채널에선 종이 기저귀를 찬 아기가 엉덩이춤을 춘다. “춤 그까짓게 뭐라고”라고 말하듯이.
안은미씨가 전시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안은미컴퍼니 단원들과 공연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관람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최현규 기

그의 말대로 극장으로 간 게 아니라 극장을 미술관 안에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하나로 무용은 극장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탐색했다. 장소 특정적 예술, 환경 예술이 그것이다. 안은미도 무용과 퍼포먼스를, 무용과 일상을 결합하고자 했고,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댄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등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불도저 위에서 추는 춤도 안무했다. 그래서 ‘한국의 피나 바우쉬’란 수식어가 붙는다.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1940∼2009)’는 무용과 연극적 퍼포먼스를 결합 ‘춤 연극’ 개념을 만들었다.
안은미는 지금까지 선보였던 실험의 연장에서 자신의 무용 인생 30년을 정리하며 또 하나의 실험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용과 미술의 스며듦, 즉 서로 다른 언어끼리의 융합 측면에서는 어떨까. 그는 “저는 안무가다. 사람들이 제가 만든 공간에서 걸어 다니면 그게 춤이다. 그게 저의 아이디어이고 개념이다. 미술관이라는 큰 캔버스에 몸으로 페인팅을 하는 거다. 미술은 물질을 다루지 않냐. 몸이 물질이다. 이들이 걸어 다니며 색을 바꾼다. 또 다른 회화를 그리는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도 이번 전시는 어디까지나 공연의 확장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무용연구자 김명현씨는 “무용도 점점 관객의 체험을 중시하고 무용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미술관 공연은 안무개념의 확장이면서 공공성 확장, 관객의 개발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술관 역시 프로그램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하니 서로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안은미래전은 미술언어와 무용언어의 화학적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뭉툭하고 거칠다. 이미 여러 세계적 안무가들이 미술로서의 무용을 얘기했다. ‘포스트모던 댄스의 개척자’로 불리는 미국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1936∼2017)은 '3차원 드로잉'을 주창하며 설치작품처럼 엮인 옷 속으로 무용수들이 몸을 넣었다 뺐다 하는 정교한 몸짓으로 그야말로 3차원적 추상을 그리는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무용계 혁신의 아이콘인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59)의 작품 ‘바이올린 페이즈’는 무용수가 모래 위에 반복적인 동작을 한 결과물로 추상회화가 탄생한다. 이 작품 바이올린 페이즈가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원예술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국내에 소개된 마당인데….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미술관으로 쳐 들어왔다는 것만으론 허전하다.
(지난 1년 동안 <손영옥의 지금 미술>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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