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만 들어…기대 없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신입사원 6명 반응은

국민일보

“조롱만 들어…기대 없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신입사원 6명 반응은

입력 2019-07-18 00:15 수정 2019-07-18 10:17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이 없는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오히려 더 큰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요. 잘 지켜질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습니다”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으로 보여요. 법의 존재만으로도 소위 ‘갑’들의 변화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바라보는 현장의 목소리는 둘로 갈렸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명시된 내용으로, 직장 내에서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한 괴롭힘을 금지하고 신고자나 피해자를 부당하게 처우할 수 없도록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지난해 12월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6일부터 시행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3.3%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대의 경우 무려 75.7%가 피해 경험을 호소했다. 전체 응답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들은 연차가 낮은 상대적 ‘약자’들이다. 직장 내 인권 보호의 법적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된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괜히 말 꺼냈다가 조롱만 받아… 긍정적인 기대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지만 20대들 사이에서는 되레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유통회사에 다니고 있는 3년차 직장인 박모씨는 “이번 시행안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대부분 조롱식”이라며 “밥 먹자는 상사 말에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 아니냐’고 받아치니 ‘그냥 잘리지 뭐’라고 답하더라. 딱 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런 인식이 대부분일 것”이라며 “절대 지켜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하나 마나라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건축업 종사자인 정모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씨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상사가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생겼다면서?’라며 웃더라. 그냥 농담거리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며 “나를 제일 괴롭히는 한 상사는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일러’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모호한 ‘괴롭힘’ 기준… “가해자 처벌조차 불분명”

언론사 입사 7개월 차인 김모씨는 상사의 폭언을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김씨는 “개인 사정으로 월차를 썼더니 ‘네가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한 게 뭐가 있어서 월차를 쓰느냐’는 말을 들었다”며 “(그 상사는) 어떤 말과 행동이 괴롭힘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정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다 너를 위한 말’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피해자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광고 회사에서 2년째 일하는 현모씨 역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이건 괴롭힘이 아니다’라고 우기면 그만인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라며 “괴롭힘이라는 생각보다 너무 당연한 사회생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피해자마저도 피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호한 기준으로 인한 악용 사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3년째 일하는 조모씨는 “꼭 필요한 업무상 지적이나 피드백 과정까지 괴롭힘의 범주에 넣으면 혼란이 올 수 있다”며 “가해자는 물론이고 모든 구성원이 개인적인 악감정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김씨는 “어쨌든 회사에서 더 유능한 사람은 갓 들어온 내가 아닌 가해자인 상사”라며 “피해 사실을 신고한다고 해도 가해자의 업무를 바꾸는 일이나 그의 징계를 회사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처벌 규정이 필요하고 이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들의 인식 변화 없이는 무용지물

이번 개정안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상사들의 인식변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며 “법만 뚝딱 만들어 놓을 게 아니라 교육 차원의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현씨는 “나이 드신 분들은 ‘옛날에는 더 심했다’ ‘지금 환경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나 때는 맞으면서 배웠다’는 식으로 말한다”며 “이런 분들의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씨 역시 “보수적인 집단의 경우 법이 생긴다고 해도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하려 할 것”이라며 “회사가 적절한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한다고 하지만 그냥 벌금을 내고 무마하는 회사가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구체적인 처벌 방법,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 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숙한 기업 문화의 첫발이 될 수도 있을 것”

물론 기대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김씨는 “나라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면이라고 본다”며 “실효성은 두고 봐야겠지만 이런 법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조심하려고 하는 상사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로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되는 첫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조업체 사무직 2년차 박모씨는 “회사에서 강경하게 대응한다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며 “우리 회사의 경우 시행 전부터 꾸준하게 법안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씨 역시 “회사가 자체적으로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며 “교육 후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문지연 기자, 김다영 인턴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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