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리포트] “8년간 연장됐던 비자 취소됐다더라” 불안한 日유학생들

국민일보

[백팩리포트] “8년간 연장됐던 비자 취소됐다더라” 불안한 日유학생들

입력 2019-07-27 05:00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의 거리. 박세원 기자

일본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독도로까지 불똥이 튀면서 연일 가열되는 상황이다. 양국 사이 대화는 끊겨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일본은 왜 그럴까. 걱정과 함께 궁금증도 커지는 상황이다. 해법은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일본 정부나 미디어를 통해 재해석되지 않은 진짜 일본인의 속내.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두 명의 청년 기자가 가벼운 백팩을 메고 일본에 갔다. 국민일보는 일본에 터를 잡은 한국인부터 한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일본인들을 두루 만나 일본에 대해, 또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 듣고 ‘백팩리포트’를 연재한다.

“일본 정부 장학금을 받고 있어 입장이 난처해요.” 일본 대학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대부분 이런 말로 거절했다. 수차례 거절 끝에 대학원생을 한 명 만날 수 있었다. 왜 인터뷰가 어려운지 유학생들의 입장을 설명해주겠다는 취지였다. 도쿄대 대학원생 A씨(25)를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A씨에 따르면 한국 유학생들은 격해지는 한일 갈등으로 피해를 입을까 요즘 걱정이 크다. 한일 갈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두 나라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도 학교 안에서만은 보호된다고 느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A씨는 대학원에 입학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A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은 일본 문부과학성 국비장학생이다. 이 장학제도는 일본 정부가 각국의 유학생을 선발해 학비·연구비·생활비를 지원해 일본 명문 국립대에서 교육을 받게 하는 제도다. A씨는 “2년마다 연장을 받아야 하는데 연장이 안 되면 쫓겨나는 상황이라 유학생들이 한일관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걸 조금씩 사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유학생들은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A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공부를 하려고 온 건데 일본이 만약 지원을 끊겠다고 감정적으로 나오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니까 그게 무섭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에게 일본의 한국인 비자 발급 제한은 실제로 닥칠 수 있는 일이다. A씨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사례도 들었다”며 “최근 8년째 일본 내 기업에서 멀쩡하게 일하다가 이번에 갑자기 비자가 취소됐다는 한국인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 사람이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A씨는 “일상에서 일본인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인터넷에는 혐한 분위기가 심해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일본 뉴스와 댓글을 보면 ‘이참에 한일 관계를 끊었다가 리셋하자’는 말이 많다”며 “그런 걸 보면 ‘왜 현실에선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까.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일본 사람들의 속내는 이런 건가’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우리 어디 가서 테러 당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 삼아 얘기하기도 한다”며 “일본인들은 문제가 보이면 해결하기보다 눈앞에서 치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인 대학원생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거리에서 반한(反韓) 분위기를 느낄 때도 있다. 그는 “요즘 들어 지하철에서 (저랑 한국인 무리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심해진 것 같다”며 “반한 감정을 모르고 일본에 온 건 아니라 ‘내 할 일만 하다가 돌아가자’는 생각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유학생들도 일본에서 나름대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A씨는 “한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는데 여기에서 일본 물건을 사는 게 미안해서 우리들(한국인 대학원생들)끼리 ‘전범 기업 제품은 사지 말자’고 말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며 “그럼에도 일본이 생활터전이라 어쩔 수는 없는 부분도 많다. 우리가 어디까지 동참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매운동이 확산된 만큼 이번에는 일본이 잘못했다고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밀고 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박세원 기자 one@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