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리포트] 기미야 도쿄대 교수 “트럼프 정부도 묵인했을 것…”

국민일보

[백팩리포트] 기미야 도쿄대 교수 “트럼프 정부도 묵인했을 것…”

입력 2019-07-28 10:43 수정 2019-07-28 11:34
“일본은 문재인정부 대북 정책 믿지 못한다”
“현실은 비관적, 한국 정부도 각오해야 한다”
“불매 운동은 큰 타격 없다”

25일 일본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일본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독도로까지 불똥이 튀면서 연일 가열되는 상황이다. 양국 사이 대화는 끊겨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일본은 왜 그럴까. 걱정과 함께 궁금증도 커지는 상황이다. 해법은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일본 정부나 미디어를 통해 재해석되지 않은 진짜 일본인의 속내.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두 명의 청년 기자가 가벼운 백팩을 메고 일본에 갔다. 국민일보는 일본에 터를 잡은 한국인부터 한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일본인들을 두루 만나 일본에 대해, 또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 듣고 ‘백팩리포트’를 연재한다.

일본 지식인은 한·일 갈등을 어떻게 생각할까.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한·일 관계를 비관적으로 봤다. 한국에 퍼진 불매운동으로 문재인정부가 타협에 나서기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신뢰하지 못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북한 문제에 있어 일본을 배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미·중 관계에서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지 않아 이번 조치가 미국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일본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에서 25일 기미야 다다시 교수를 만났다. 기미야 교수는 일본이 수출 규제 사유로 국가 안보를 거론한 것은 타당하다고 봤다. 한국은 일본이 안보상 신뢰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일본은 북한이 확실하게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국은 남북관계가 좋아야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은 문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 자체를 믿지 못하는데 문 정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만 매달리고 일본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기미야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는 나라는 바로 옆에 있는 한국과 일본”이라며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두 나라가 이익을 공유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미·중 관계에서 미묘한 입장을 취해 이번 조치가 미국의 암묵적 동의를 얻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기미야 소장은 “한국은 미국과 동맹이면서 중국에 경제 의존도도 높다. 북한 문제 때문에 중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며 “일본처럼 미·중 관계에서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은 이번 한·일 갈등에 대해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기미야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지지는 안 해도 이미 묵인했을 거라고 본다”며 “미국이 한국에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설지 확실하게 하라는 압박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일본 경제신문들은 사설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제살깎아먹기’라고 비판했다. 일본 기업들도 수출 규제를 반대하는 셈이다. 기미야 소장은 “그럼에도 아베 정부에서 안전 보장 문제라고 하니 일본 기업도 자기 회사 이익만 내세우긴 어렵다”며 “아직 가시적인 피해는 없지만 기업들도 (규제가) 취소되기를 바라고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WTO 제소에서는 승산이 있을 거라고 봤다. 기미야 교수는 “재판은 어느 쪽이 100% 이기고, 어느 쪽이 완패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일본은 국가 안보 문제를 들며 얼마든지 규제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이 ‘다 옳지 않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이 수출 규제가 위법하다는 것을 알면서 이런 짓은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사 문제를 경제와 연결시키는 건 전례가 없다는 한국 측 주장에 대해서는 “처음은 아니다”라고 했다. 기미야 교수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이 한국에 대해 경제적인 가치를 제공해주겠다고 해왔고 경제와 역사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사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한·일 문제가 있다 해도 경제·안보 협력을 해야 하기에 그간 과거사는 적당히 타협해 나갔다”며 “그러나 이제 한국도 일본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어졌고, 안보 상황이 바뀌면서 일본은 한국을 안보적으로 어떻게 위치지을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정문

한국의 불매운동은 이해하지만 문 정부가 타협에 나서기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기미야 교수는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은 없고 일본 정부도 피해받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한·일 정부가 타협해야 문제가 풀리는 데 국민 눈치 보느라 타협하기도 어려워졌다”며 “그런 운동 자체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진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1965년 청구권 협정도 존중하는 묘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판결의 핵심은 피해자 개인에게 청구권이 있다는 것”이라며 “일본 기업만 배상해야 한다는 건 중점이 아니다. 일본 경제협력으로 몸집이 커진 한국 기업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와 나라 간의 협의를 뒤집으면 안 된다”며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일본 정부도 납득할 만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흥 강국 간의 패권 다툼은 불가피하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대해선 “물론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솔직하게 일본 사회가 한국을 견제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 정부가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한다면 적당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쓰비시 압류 재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일본 정부도 한국에 대해 더욱 뼈아픈 지점을 찌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실은 낙관적으로 볼 수 없어 한국 정부도 각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쿄=글·사진 박세원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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