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도 아이스크림 혼자 못 먹으면 토라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국민일보

“위안부 피해 할머니도 아이스크림 혼자 못 먹으면 토라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김대월 나눔의 집 학예실장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봐야 공감 커지고 문제해결 동력 생겨”

입력 2019-08-13 15:35 수정 2019-08-13 18:05

올해로 두 번째인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을 맞아 국내 6개 도시와 독일에서 ‘할머니의 내일’을 주제로 순회전시가 열린다. 전시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해방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사료 및 유물, 사진, 그림이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이즈에서 전시를 기획한 김대월(34)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 학예실장을 13일 만났다. 그에게 기획의도를 물었더니 “위안부 문제의 첫 단추를 다시 꿰기 위해 일반인으로서의 할머니들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고 말했다. 수요시위에 나온 ‘피해자’가 아닌 일상을 즐기는 평범한 할머니를 조명했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할머니들은 아베 신조 정권이 사과할 것이라는 데 크게 기대하지 않고 특히나 요즘처럼 경제보복 하는 상황에서 이런 기대는 더욱 꺾였다”며 “그래서 할머니들은 후세대가 사과를 받아주길 바라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부분을 가장 걱정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머니들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볼 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보며 ‘나와 다른 사람’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바라봄으로써 할머니들 아픔에 공감해야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의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할머니들이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이 주를 이룬다.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이옥선입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입니다”라는 문구가 활짝 웃는 할머니들 사진 옆에 쓰여있다.

고(故) 김화선 할머니가 심리치료 과정에서 그린 ‘결혼’이란 그림은 일본군에게 유린당하는 그림들 사이에서 눈에 띈다.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게 소원이었던 김화선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 학생들이 찾아오면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그 시절 대부분 여성의 삶이지만 할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전시장 한켠에서 방영되는 영상은 관람객에게 소소한 웃음을 준다. “박옥선은 노래도 잘 못하는데 아무데나 가서도 노래 하라면 해.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놀면 다음 날 못 일어나” “강일출이 집에 있으면 집이 분주해. (집에) 파리가 들어온 것처럼 앵앵거려”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할머니들의 얘기가 나온다.

전 국민을 뜨겁게 달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할머니들의 모습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할머니들은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 태극기 손수건을 두른 채 막대풍선을 두드린다. 양볼에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대한민국’을 외친다. 우리 대표팀이 골을 넣으면 할머니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뛴다. 김 실장은 “TV에서 시위하고 우울한 할머니들 모습만 봤던 터라 처음에는 나와 다른 분들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혼자 아이스크림 못 먹으면 토라지기도 하는 우리와 똑같은 분들”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할머니들은 자신이 아픈 역사이니까 일본으로부터 사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모든 부분에서 위안부 피해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일반인에게 직장과 가정의 삶이 따로 있듯이 할머니들에게도 수요 시위는 일종의 ‘직업’과 같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필요에 의해 할머니들을 24시간 365일 피해자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할머니들도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특히 이 ‘필요에 의해 피해자로 보는 경향’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위안부 관련 이슈도 아닌데 언론은 ‘일본’이란 글자만 나오면 나눔의 집을 찾는다. 학계도 대일(對日) 비판을 위해 일제의 잔혹성까지만 연구하지 해방 이후 할머니들이 어떻게 돌아와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할머니들이 항상 일본 대사관 앞에 있길 바라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은 “강제동원의 불법성은 끌고간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제자리에 되돌려놓지 않은 데까지 있는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할머니들을 일본에서 데려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우리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는데 그 전에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다는 걸 몰랐을 것 같느냐”며 “어떤 할머니는 살아 남으려 악착같이 돈을 모았는데 ‘위안부가 돈 모아서 뭣 하려고 그러느냐’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할머니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정부 지원도 절실하다고 했다. 김 실장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당한 할머니들에게 제일 먼저 했어야 하는 지원은 치료인데 정부조차 돈을 먼저 쥐어줬다”며 “이게 진정한 지원이라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나눔의 집에 대해서도 그는 “그동안 50여분이 생활해 위안부 문제 관련 자료가 2000점이 넘는 곳”이라며 “나눔의 집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실장은 “‘내일’은 ‘과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데 ‘과거’라는 단추가 잘못 꿰어진 상태에서 ‘내일’이 좋을리 없다”고 했다. 그는 “일본의 사과도 중요하지만 후세대가 할머니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해야 이후 똑같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방안을 세울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의 내일이 곧 우리의 내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