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두 ‘이옥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국민일보

변하지 않는 두 ‘이옥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두 번째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맞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입력 2019-08-13 17:12 수정 2019-08-13 17:56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중국 옌지와 만주에는 10대 소녀 이옥선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부산에서, 한 명은 대구에서 열차와 트럭을 갈아타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곳은 ‘양철집’. 이들은 일본군 위안소였던 이곳에서 수년간 성노예로 살았다. 약을 먹고 죽으려 해도 돈이 없었고, 나무에 목을 매려 해도 목 맬 나무가 모두 불타버려 그저 견딜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76년이 흐른 2019년 여름, 할머니가 된 이들은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름도 똑같고 삶의 굴곡까지 똑 닮은 두 할머니를 지난 12일 나눔의집에서 만났다. 부산 출신 이옥선(92) 할머니와 대구 출신 이옥선(89) 할머니는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는 것이 삶의 마지막 과제라고 했다.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12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산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나 극우 인사들의 망언보다 그에 동조하는 한국사람이 더 밉다고 했다. 최현규 기자

대구 출신 이옥선 할머니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단정한 옷을 서둘러 찾아입고 일본 정부의 사죄가 없이는 죽을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현규 기자

나눔의집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6명이 생활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에 대해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건 좋은 일이고 다행”이라면서도 쓰린 마음이 함께 도진다고 했다. 부산 출신 이 할머니는 “일본이 사과를 안 하는데 기념일이 무슨 소용이냐”고 원통해했다.

사진을 찍겠다는 말에 단정한 옷을 골라 입고 나온 대구 출신 이 할머니도 “사과를 받고나서 피해자들을 기리는 게 순서”라고 거들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말을 잘 들어주면 좋으련만 지금은 우리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 야속스럽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두 할머니는 우리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지는 않았다. 부산 이 할머니는 “나라 없는 설움을 온몸으로 겪은 우리가 나라를 못 믿으면 누구를 믿겠냐”면서 “늦게나마 대통령이 바로 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대구 이 할머니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에 원통한 마음을 다독여주는 말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극우 인사들의 망언도 망언이지만 여기에 호응하는 한국 사람들이 더 밉고 야속하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일본 제품 안 사고 안 쓴다’고 하자 부산 이 할머니는 “일본이 잘못했다고 외치긴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고 왔는데, 왜 가만히 서 있는 소녀상에 침 뱉고 화를 부채질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구 이 할머니도 “소녀상에 침 뱉고 욕하는 사람들은 평생 감옥에 산다 해도 시원찮다”며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 확신이 사그라드는 기분”이라고 착잡해 했다. 두 할머니 가슴 속에는 지난달 경기도 안산에서 20~30대 남성 4명이 소녀상에 침을 뱉은 일이 두고두고 남아 있는 듯 했다. 이들은 얼마 전 나눔의 집을 찾아 무릎 꿇고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는 한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 두 가지다. 부산 이 할머니는 “사죄 말고 일본 정부에 바라는 것은 없다”며 “(위안소에) 갔다 온 것만 해도 끔찍한데 ‘내가 피해자’라고 외치는 일이 즐겁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날 때마다 증언들이 사라지는 기분”이라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대구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일본 전범 기업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는 한국과 일본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한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화해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대구 이 할머니는 침대 머리맡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한장 꺼냈다. 손바닥만한 종이에는 일본 전범기업들 이름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이 할머니는 “어떤 회사가 전쟁통에 한국 사람들을 괴롭혔는지 적어달라고 해서 받은 것”이라며 “이 종이를 손에 꼭 쥐고 매일 기도한다. 이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와도 화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빈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 방에는 젊은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 유독 많다. “색시 한명이 봉사하러 왔다가 갑자기 팔을 잡아끌어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고와 방에 붙여달라고 했다”고 했고, “학생들이 많이 온다는 수요집회에 고운 옷을 입고 나갔는데 찍혔다”고도 했다.

두 할머니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라도 위안부 문제가 원칙대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이 할머니는 기자 손을 꼭 잡고 “우리 문제는 널리 알려야 해. 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알려야 해. 죄 없는 사람들이 전쟁에 끌려가는 나라는 이제 없어야지. 나는 너무 힘들었지만 우리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일 겪지 말아야지”라고 말했다.

대구 이 할머니도 “금싸라기 같은 청년들이 전쟁 때문에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곳에 찾아오는 청년들이 참 예쁘고 고마워. 자식이 있었으면 이런 느낌이었을거야. 한국과 일본이 한마음이 되면 전쟁 날 일도 없고 청년들도 다치지 않겠지”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한 것이다. 지난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승격됐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0명만 생존해 있다. 평균 연령은 91세다. 1992년 1월 처음 열린 수요집회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1400회를 맞는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추모관에 전시된 일본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240명의 피해자가 세상에 드러났지만 이제는 20명밖에 남지 않았다. 최현규 기자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국가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