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항상 거기 있게 한다”

국민일보

“짝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항상 거기 있게 한다”

[책과 길]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지음/ 난다/ 668쪽/ 2만5000원

입력 2019-08-14 10:46 수정 2019-08-14 15:33
지난해 8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황현산. 한국작가회의 제공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새 책이다. 그의 트위터 계정 @septour1에 쌓인 글을 갈무리했다. 고인이 남긴 평론집이나 산문집에 견주면 이 책은 그의 저작 리스트에서 가장 한갓진 귀퉁이에 놓일 작품이겠지만, 황현산의 팬이라면 각별한 의미를 띠는 책일 게 분명할 듯하다. 황현산이라는 거목의 뿌리부터 우듬지까지, 그 세세한 생김새를 살필 수 있어서다.

알려졌다시피 황현산은 ‘파워 트위터리안’이었다. 그는 2014년 11월 8일부터 세상을 떠나기 40여일 전인 2018년 6월 25일까지 트위터를 붙들고 살았다. 1325일에 달하는 기간 동안 그가 올린 트윗은 무려 8554건. 그의 트윗은 날카롭고 선득했으며, 때론 뭉근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황현산의 트윗에 열광했다. 팔로워는 한때 40만명을 웃돌기도 했었다.

황현산의 트윗이 인기였던 건 글에서 묻어나는 기품 때문이었을 듯하다. 황현산은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한국어의 제1급 사용자”였고, 출판사 보도자료에 담긴 글을 옮기자면 “살아있는 누구나의 사전”이었다. 그는 트윗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종종 오타나 비문이 섞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정갈하고 가지런했다. 그의 아들 황일우씨에 따르면 그는 “트윗을 올릴 때도 ‘찰칵’ 소리가 날 때까지 문장을 공들여 다듬곤” 했다.

황현산이 트위터에 몰두한 기간은 한국사회가 21세기 들어 그 어느 때보다 신산했던 시절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국정농단의 충격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짓누르곤 했다. 그랬기에 황현산은 자주 박근혜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 중세의 암흑은 언제 걷힐까” 자문하면서 “젊은 날 분노할 일이 많았지만 나라의 미래가 이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한국의 보수 패거리가 지금까지 팔아먹고 산 것은 박정희 이미지밖에 없었다. 박근혜까지 나왔을 때는 거의 떨이 수준이다. 떨이가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민 갈 필요 없다.”

“우리집 큰애는 네 살 때 백화점에서 마네킹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에 대국민 담화를 하는 모양을 보면서 우리집 애가 그때 무얼 보고 공포에 질렸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러다 유신 시대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고 어느 젊은 문인이 말했다. 애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한번 일어선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기지 않는다. 무릎이 자주 다치긴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황현산이 주야장천 논평을 쏟아내고, 특히 민감한 정치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을 우려했다. “황현산의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 탓이다. 하지만 그는 “체면을 지키려 했으면 트위터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말하면서 뾰족한 글을 쓰고 올리길 반복했다.

선배 문인을 향해 가차 없는 비판을 쏟아낸 적도 많았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대해서는 “여러 종류의 난해시를 읽고 해설했지만 이 시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정지용의 ‘향수’는 “상투적인 작품”이라고 깎아내렸다. 승려 혜민의 책을 놓고서는 “이런 말이 계속 입에서 나온다는 것도 확실한 재주”라고 비꼬았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에 대해선 “칼럼을 읽고 기분이 나쁜 것은 나와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엉성하고 못 쓴 글이기 때문”이라고 혹평했다.

후배 시인들에게 황현산은 일급의 변호인이기도 했는데, 트위터에 올리는 글들은 변론서 역할을 할 때가 많았다. 난해하다는 이유로, 과거의 시와는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젊은 시인을 평가 절하하는 사람을 그는 마뜩잖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쓰기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자주 올렸다.

“글은 말을 본으로 삼지만 말과 다르다. 수식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한쪽에 말이 있고 한쪽에 수식이 있다. 그 사이에 여러 종류의 글이 있다. 이걸 아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글을 쓰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은 ‘말하는 것처럼 써라’일 터인데, 글을 쓰는 데 가장 해로운 것도 그 말이다. 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말을 성찰한다는 것이다.”

가닿을 수 없는 봉우리처럼 여겨지던 ‘평론가 황현산’이 아닌 ‘자연인 황현산’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선사하는 재미다. 그는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가 드러나는” 11월을 좋아했고, 시즌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이 끝날 때면 ‘왕겜’ 금단 현상을 호소하곤 했다. 나무로 된 장기알을 구입했다고 사진을 찍어 자랑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많은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흥건한 그리움을 느낄 것이다. 이제 세상에 없는 어른이니 황현산을 향한 독자의 마음은 짝사랑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니 2015년 2월 13일에 올린 이런 트윗을 읽으면 도리 없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학생들이 나더라 짝사랑을 한 적이 있느냐 물었다. 왜 없겠는가. 젊은 날 내가 짝사랑한 사람도 있었고, 나를 짝사랑한 사람도 있었다. 인간의 일 가운데 짝사랑만큼 훌륭한 일도 드물다. 짝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항상 거기 있게 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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