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한쪽 다리 잃은 베네수엘라 남성…‘걸어서’ 남미 땅끝까지

국민일보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 잃은 베네수엘라 남성…‘걸어서’ 남미 땅끝까지

입력 2019-08-20 07:38 수정 2019-08-20 10:05
예슬리에 아란다. AP=연합뉴스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50대 베네수엘라 남성이 의족에 의지해 남미를 종단했다. ‘도전’을 꿈꾸는 그는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서” 먼 길을 떠났다고 했다.

AP통신은 베네수엘라 국적의 예슬리에 아란다(57)를 남미 최남단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만나 인터뷰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가 목적지인 우수아이아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1년. 무려 1만4500㎞를 걸었다. 등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의족을 한발 한발 내디뎠다. 험난한 여정을 왜 시작했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싶었다는 것. 지난해 여름 베네수엘라를 떠난 그는 길 위에서 가을과 겨울, 봄을 지나 ‘세상의 끝’에 섰다.

버스운전기사였던 아란다는 약 6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버스에 함께 타고 있었던 스물 세 살의 딸은 오른쪽 다리를 잃고, 왼쪽 다리마저 다쳤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목숨을 건진 것에 감사했다고 한다. 휠체어를 탄 딸과 목발을 짚고 동네를 거닐 때 이웃들이 건네는 미소에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주변의 사랑과 지지를 받은 아란다는 자신 역시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떠날 준비를 했다. 극심한 경제난 탓에 여행 경비는 고작 30달러(한화 약 3만6000원)가 전부였다. 다행히 의족 제작 업체가 알루미늄 의족을 지원했고, 한 신발 회사로부터 베네수엘라 국기 색으로 꾸며진 운동화를 선물 받았다. 어쩌면 일주일도 버티기 어려웠을 돈과 뜻밖의 선물. 소지품과 함께 짊어진 가족의 걱정까지. 그렇게 길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장애가 없는 데도 큰 꿈을 꾸는 법을 잊은 것 같아요. 현재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팔찌를 팔아 경비에 보탰다. 잠자리를 내어준 여러 고마운 사람을 만났고, 안데스산맥 고지대와 같은 험난한 길을 통과할 땐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탔다. 마침내 우수아이아에 도착한 아란다는 “꿈을 이뤘다”며 “다른 이들도 꿈을 좇아 정복하라는 것이 내가 전하고픈 메시지”라고 말했다.

아란다는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아내와 네 자녀가 그를 베네수엘라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란다는 “베네수엘라를 떠난 대부분의 사람은 상황이 나아지면 고향에 오고 싶어 한다”면서 “언젠가 우리나라도 자유로워질 테니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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