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사기’, 환자 인공수정에 자기 정자 사용한 파렴치 의사들

국민일보

‘정자 사기’, 환자 인공수정에 자기 정자 사용한 파렴치 의사들

美 텍사스주, ‘정자 사기’ 성폭행 범죄로 처벌키로

입력 2019-08-23 07:00
'정자 사기' 피해자인 이브 와일러(왼쪽)와 그의 어머니인 마고 윌리엄스. 출처 달라스모닝뉴스

미국 텍사스주에 거주하는 이브 와일리(32)는 16살이 되던 해 자신이 기증받은 정자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불임 남편을 뒀던 그녀의 어머니 마고 윌리엄스는 자신의 담당 의사였던 킴 맥모리스에게 정자 기증자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맥모리스는 이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정자 은행에서 정자를 구했다고 말했고, 윌리엄스는 기증받은 정자로 딸 와일리를 낳았다.

와일리는 지난해 다른 많은 미국인들이 그랬듯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DTC)를 받았다. 미국 식품의약처(FDA)가 지난 2017년 10개 질환에 대해 소비자가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민간 유전자 검사업체에 직접 유전자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이듬해까지 수천만명의 미국인이 유전자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와일리는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했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불임 주치의 맥모리스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맥모리스가 당시 정자은행에서 기증받은 정자가 아닌 자신의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 시술을 해놓고선 그녀의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와일리는 “우리는 유전적 정체성이라는 기초에 기반해 각자의 삶을 쌓아간다”며 “그 기초를 이루는 벽돌이 사라져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바뀔 경우 막대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최근 소비자 유전자검사가 보편화되면서 와일리의 사례처럼 불임 전문의들이 비밀리에 기증자가 아닌 자신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 시술을 한 사건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별도의 정자 등록 시스템이 없었던 수십년전, 정자 기증을 요청한 여성에게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받았다고 속이고 실제로는 주치의 자신의 것을 제공한 ‘정자 사기’ 사례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피해자들과 그 자녀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내 3개 주(州)는 이 같은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중 텍사스주는 성폭행의 한 유형으로 규정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성범죄자로 등록된다.

미 국내외에서 발생한 20여건의 정자 사기 사례를 연구하고 있는 인디애나대의 조디 마데이라 법학과 교수는 코네티컷과 아이다호, 유타, 네바다 등 미국 국내 뿐만 아니라 영국, 남아공, 독일,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디애나주의 불임 전문의 도널드 클라인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최소 30여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 시술을 했다. 유전자검사 결과 그가 생물학적 아버지인 사람은 61명에 달했다.

클라인이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지만 ‘집행유예 1년’이라는 관대한 처벌이 주어졌다. 당시 인디애나주에 이 같은 행위를 처벌할 법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디애나주는 지난 5월에야 정자 사기를 중대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피해자가 담당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마데이라 교수는 문제 의사들의 파렴치 행위에 대해 “어떤 불임 주치의들은 단순히 인공수정 시술 과정에서 자신의 정자를 사용하는게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기증 받은) 냉동 정자는 권장되는 의학적 표준이 아니었고, 냉동 상태가 아닌 자신의 정자를 사용하는 게 불임 치료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에 갇혀 자신들의 불법 행위를 합리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데이라 교수는 문제의 의사들이 더 나쁜 동기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나르시시즘 등 정신 건강 문제로 이 같은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장담한다”며 “특정 여성에 대해서는 이성적 매력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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