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 등 구약 번역자 피득 목사, 왜 기억해야 하나?

국민일보

‘시편 23편’ 등 구약 번역자 피득 목사, 왜 기억해야 하나?

한교총, 알렉산더 피터스(한국명 피득) 목사 생애 조명한 심포지엄

입력 2019-08-23 11:03 수정 2019-08-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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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A. 피터스 목사가 1924년 53세 때 찍은 사진.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제공

우리나라 신약을 최초로 번역한 이는 존 로스 목사이다.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고 경기도 용인에 ‘로스 기념관’을 건립해 그분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구약의 경우,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가 1898년 시편 일부를 한국어로 번역한 ‘시편촬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1911년 최초의 한글 구약이 ‘구약젼서’라는 이름으로 출판됐는데 중심 역할을 한 분이 피터스 목사다. 우리 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구약 성경을 우리말로 읽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피터스 목사는 한국교회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강민석 선임기자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이승희 박종철 김성복 목사)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위원회와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회장 박준서 목사)는 22일 오후 서울 새문안교회 새문안홀에서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할 구약성경 번역자 알렉산더 A. 피터스 목사(한국명 피득)’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피터스 목사는 1871년 제정러시아시대에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암송했다. 성인이 된 후 일본 나가사키에서 미국인 선교사 피터스를 만나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세례를 준 선교사의 이름을 따서 개명했다. 피터스 목사의 본명은 ‘이삭 프룸킨’이었다. 러시아어 히브리어 독일어 등을 통달한 그는 한국에 와서 2년 남짓 한국어를 배운 후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해 ‘시편촬요’를 냈다.

최초의 구약성경 한글 번역본인 '시편촬요' 표지(1898년)와 피터스 목사가 작사한 찬송가 383장과 75장.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제공

나는 한국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구약성경 번역에 중심추 역할

시편을 번역하면서 동시에 14편의 시편을 찬송가로 부를 수 있도록 가사화했다. 이사야 53장을 두 편의 찬송가 가사로, 사무엘상 2장에 나온 한나의 기도를 한 편의 찬송가 가사로 만들었다. 이렇게 작사한 17편의 찬송가가 ‘찬셩시’ 제2판에 수록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 ‘주여 우리 무리를’(75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를 지었다.

피터스 목사는 이후 미국 맥코믹 신학교(1900~1902)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신학교로부터 독일 유학 특별 장학생을 수여 받았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가서 할 일이 있다”며 장학금을 거절했다.

1904년 방한해 성경번역위원회 위원으로 구약성경 번역 작업에 동참했고, 1911년 최초로 구약 전체가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경 ‘구약젼셔’가 출간됐다. 1931년부터 개역 작업은 피터스 목사의 주도하에 진행됐고 1938년 ‘개역구약성경’이 출간돼 큰 결실을 보았다. 현재 교파를 초월해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구약성경은 ‘개역구역성경’으로, 후에 표준맞춤법에 따라 고치고 고어 문체 등을 수정한 것이다. 1941년 70세로 은퇴한 피터스 목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패서디나시에서 말년을 보내다 1958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심포지엄 현장. 강민석 선임기자

2017년 11월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를 발족한 박준서 연세대 명예교수는 “기념비는커녕 무연고자 묘소처럼 초라하게 방치된 피터스의 묘소를 보면서 부끄러운 자괴감으로 한동안 머리를 들지 못했다”면서 “그를 기념하는 일은 교회사․선교적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업회는 피터스 목사 기념비 건립과 설교집 출간, ‘시편촬요’와 ‘찬셩시’ 영인본 제작, 전기 집필 및 출판, 기념 성서연구원 개원 등을 할 예정이다.

한글 성경, 세종 이후 한글 연구 촉발시켜

이어 주강식 증산로교회 목사는 ‘한글 성경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발제했다. 주 목사는 “세계 선교 역사상 피 선교국에 선교사가 피 선교국의 성경을 들고 입국한 경우는 없다”며 “또 자생적 교회가 먼저 설립되고 세례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의 자긍심을 더 높이는 역사”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82~1900년 신약 성경 번역, 1900~1910년 구약 성경 번역 시 한국선교 반세기 만에 완성된 것이다.

주 목사는 “한글이 연산군의 한글 폐지 이후 갑오경장까지 약 390년간 암흑에 묻혀 지냈다”며 “존 로스 목사 팀이 합력해 한글 역본 성경을 간행하면서부터 한글이 햇빛을 보게 됐다. 세종 이후 한글에 관한 연구를 촉발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자인 로스 목사는 한국이 자기 문자를 가진 나라이며 그 문자는 부녀자도 쉽게 깨칠 수 있는 우수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과 같은 나라는 성경과 전도 문서의 보급이 가장 쉬운 나라이므로 한글 성경의 역산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했다.

안성삼 한교총 피터스목사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은 논찬에서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피터스 목사님 같은 분을 예비하셔서 양질의 번역 성경을 자유롭게 읽고 은혜받게 하셨다”며 “아직도 지구촌에는 우리처럼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곳이 많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역동적인 세계선교를 통해 복음을 힘 있게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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