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걷자” 고진영이 우승 직전 디펜딩챔피언에게 건넨 말

국민일보

“우리 함께 걷자” 고진영이 우승 직전 디펜딩챔피언에게 건넨 말

입력 2019-08-26 11:17
브룩 헨더슨(왼쪽)과 고진영이 함께 걷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4승 달성을 눈앞에 둔 긴장감 넘치는 순간에도 고진영(24)은 세계랭킹 1위 다운 대인배 면모를 보였다. ‘72홀 노보기’의 진기록을 쓴 것도 모자라 갤러리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던 디펜딩 챔피언 동료와 팬들을 배려했다.

26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로라의 마그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캐나다 퍼시픽(CP) 여자오픈 4라운드 마지막 18번 홀이었다. 고진영은 ‘챔피언조’에서 함께 플레이한 니콜 라르센(덴마크)에게 4타, 브룩 헨더슨(캐나다)에게 6타 앞서 있었다. 마지막 퍼팅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우승을 따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진영은 18번 홀 그린으로 향하기 전 헨더슨을 불러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헨더슨은 LPGA 투어 통산 9승을 거둔 캐나다 최고의 골프 스타다. 17살이던 2015년 비회원으로 캄비아 포틀랜드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일찌감치 국위선양에 나섰다. 2016년 정규회원으로 LPGA 투어에 데뷔했고 온갖 대회를 휩쓸었다.
캐나다 골프 스타 브룩 헨더슨. 연합뉴스

이 대회 디펜딩 챔피언 역시 헨더슨이다.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45년 만에 캐나다 내셔널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캐나다인 선수라는 영광을 안았다. 이런 배경에 선 헨더슨은 이번 대회 내내 구름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자국에서 펼쳐지는 만큼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고진영은 이 대회를 마치기 전 벅찬 순간을 헨더슨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한 채 사이좋게 걸었다. 18번 홀 그린 주변에 모여있던 관중은 새로운 챔피언이 될 선수와 자국을 빛낸 디펜딩 챔피언이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에 큰 환호를 보냈다.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고진영. 연합뉴스

AP통신에 따르면 고진영은 당시 헨더슨에게 “이 관중은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헨더슨은 “아니야. 내가 아닌 너를 위한 사람들이야”라고 화답했다. 고진영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18번 홀 그린을 향해 걸어갈 때, 이곳에 있는 관중은 내가 아닌 헨더슨을 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가 캐나다인인 만큼 당연했고, 정말 많은 팬이 몰려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헨더슨의 화답에)우리는 함께 걸었다”고 덧붙였다.

헨더슨 역시 인터뷰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다”며 “내가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고진영이 우승해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진영은 세계 1위다. 비현실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며 “가장 어려운 투어에서 4승을 했다”고 칭찬했다.

이날 헨더슨은 18번 홀을 파로 먼저 마쳤다. 이어 퍼팅에 나선 고진영은 버디 퍼트에 성공하며 우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고진영은 1타를 더 줄이며 라르센보다 5타, 헨더슨보다 7타 앞선 최종합계 26언더파 262타로 우승하며 시즌 4승째를 거뒀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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