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추석 배송 돕던 날, 집배원 아빠는 길에서 죽었다

국민일보

아들이 추석 배송 돕던 날, 집배원 아빠는 길에서 죽었다

“정규인력 충원·예산 확보 등 근본 대책 마련하라”

입력 2019-09-10 10:41 수정 2019-09-10 13:22

집배원에게 명절 준비는 사치다. 가족까지 거들어야만 끝나는 물량 탓에 허덕인다. ‘바쁘다’는 말로는 이 상황을 전부 담지 못할 때도 있다고 했다. 우체국에서는 명절 직전이나 선거철을 ‘특별소통 기간’이라고 부른다. 택배 물량이 평소보다 5배나 불어나기 때문이다. 집배원은 이 기간을 ‘죽음의 기간’이라고 부른다. 인력은 부족한데, 물량은 많다. 시간은 없는데 제 때 배송해야한다. 이 기간 업무시간외 근무는 이들에게 일상 같다. 참극은 또 벌어졌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폭증한 물량을 배달하던 우체국 집배원이 지난 6일 숨졌다. 교통사고였다. 고인은 휴가자의 물량까지 떠안은 상태였고, 넘치는 물량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아들의 손까지 빌려 해결하던 중이었다. 올해 들어 사망한 집배원만 벌써 12명이다.

충남 아산시 아산우체국 집배원 박모씨가 6일 저녁 7시40분쯤 물량 배송 도중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7일 전국집배노동조합이 밝혔다. 정의당은 지난 9일 당 상무위원회에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박씨는 사고 당일 오전 6시50분쯤 출근해 추석 택배 물량을 사고 직전까지 운송했다. 원칙적으로 일몰 이후에는 배달을 종료해야하지만 명절 등 특수한 기간에는 예외다. 더욱이 그는 3일부터 같은 팀에 소속된 집배원이 휴가를 내 겸배를 했다. 마침 이날은 배송 물량이 많아 고인의 아들이 아버지의 배송을 도운 날이었다. 아들까지 동원해 업무를 ‘잘’ 끝내려고 했지만 그날 숨을 거뒀다. 노조는 “사고 당일 넘치는 물량 탓에 아들이 도와주고 난 뒤 배달을 마쳤고 우체국으로 돌아가는 길 사고가 났다”고 전했다.

노조에 따르면 올해 추석연휴를 앞둔 물량은 평소보다 47%,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하지만 주52시간제는 꿈도 못 꾼다. 이들은 주52시간제에서 예외를 두는 탄력근로제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일몰 이후 배송 금지 규정에 맞춰 명절 기간 우편물 배송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명절 기간 늦은 저녁까지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라며 “집배원이 야간에 오토바이를 운행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우정사업본부에 일몰 후 우편물 배송 금지 원칙 준수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원칙적으로 금지된 일몰 이후 배송 규정과 별개로 명절 등에는 오후 9시까지 업무시간을 연장하는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 규정에 맞춰 만들어진 고인이 근무하던 아산우체국의 추석 명절 대비 ‘우편물 특별소통 종합계획’에는 ‘해당 기간 배달분야는 오후 9시 이전에 배달 종료 후 귀국’이라는 근무지침이 명시돼 있다.

연합

노조는 “매년 반복되는 명절 물량 폭증에도 대체 배달인력 없이 집배원에게만 업무를 전가시켰다”면서 “주52시간 예외를 두는 탄력근로제 합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27년간 우체국에 근무하며 가족들과 흔한 저녁식사 한번 하지 못할 만큼 성실하게 일해왔다”며 “우정본부는 이런 성실함을 악용해 탄력근로제를 합의하고 명절 배달인력추가에 대한 대책 없이 물량을 전가했다”고 강조했다.

추혜선 정의당 민생본부장은 지난 9일 당 상무위원회에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문제를 해결할 정규직 인력 충원과 예산 확보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며 “두 달 전 우정사업본부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려 할 때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는 듯 하더니 그마저도 더디고 ‘일몰 이후 집배 금지’라는 규칙은 늘어난 물량과 부족한 인력 앞에 무용지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정사업본부는 예산구조 탓 하지말라”며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데가 어디 있겠느냐”고 강하게 말했다.

오현암 집배노조 국장은 “인력충원, 우리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적어도 2000명은 증원돼야한다”며 “애초 권고된 정규인력이 아닌 위탁중심 인력고용계획만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편함에 꽂기만 하면 되는 편지 물량이 감소한 건 맞지만 대면 업무, 즉 직접 서명을 받아야하는 등기 같은 건 최근 10년 동안 2배 늘었다”며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배원은 업무시간 내내 100m 달리기를 계속하는 것 같은 신체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정부기관으로서 사회적 합의를 주도해야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노조와 정의당 측 주장에 대해 “‘일몰 후 집배금지와 관련된 규정은 없다”며 “추석 우편물 특별소통기간으로 정하고 해당기간에 집배 보조인력과 운송차량 지원 등 각종 소통자원을 동원해 급증하는 추석물량을 배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