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궁의 CIA 스파이’ 정체 둘러싼 진실게임

국민일보

‘크렘린궁의 CIA 스파이’ 정체 둘러싼 진실게임

입력 2019-09-11 15:02

러시아 크렘린궁에 잠복했다 탈출한 미 중앙정보국(CIA) 스파이의 정체를 두고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 언론은 스파이로 추정되는 인사가 2년 전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올레그 스몰렌코프’라고 공개했다. 크렘린궁은 그가 전직 직원이 맞는다고 확인하면서도 고급 정보와는 거리가 먼 하급 관리였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에 거주 중이던 스몰렌코프는 자신과 관련된 보도가 나온 직후 자취를 감춘 것으로 파악됐다.

스몰렌코프는 주미 러시아 대사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서 2017년 6월 부인과 세 자녀와 함께 남유럽 국가인 몬테네그로로 여행을 갔다가 자취를 감췄다고 영국 가디언이 10일(현지시간) 러시아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CNN 등 미국 언론은 CIA가 이 시기에 그를 빼오기 위해 비밀 작전을 실시했다고 전날 전한 바 있다. 러시아 당국은 스몰렌코프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던 중 그가 해외로 도피한 사실을 알아챈 것으로 알려졌다.

스몰렌코프는 미국 근무 당시 CIA에 포섭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스몰렌코프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등 서기관 직책으로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2006년 워싱턴 교외인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기록도 남아 있었다. WP는 “고위 러시아 외교관은 미국에게는 탐이 나는 정보원일 것”이라며 “스몰렌코프는 러시아 근무 이후 외교부 내에서 직급이 급상승했다”고 전했다.

스몰렌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외교 책사인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의 측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주미 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스몰렌코프는 주미 대사관 근무 시절 우샤코프 보좌관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2008년 주미 대사 근무를 마치고 당시 총리였던 푸틴 대통령의 외교 보좌관을 맡았다. 푸틴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남았다.

러시아 정부는 스몰렌코프의 존재를 확인했다. 러시아가 첩보 관련 사안에서 배반자의 신원을 공개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스몰렌코프는 실제로 대통령 행정실에서 일한 바 있다. 다만 그는 몇 년 전 내부 명령에 따라 해고됐다”며 “그가 맡았던 직책 역시 고위급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스몰렌코프가 푸틴 대통령에게도 접근 가능했었다는 미국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그의 직위로서는 대통령과 접촉할 권한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스몰렌코프는 미국으로 탈출한 이후에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고 거주지도 워싱턴으로 선택했다. 스몰렌코프의 한 이웃은 그가 올해 초 이사를 왔으며 CNN과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나온 지난 9일 밤에 서둘러 집을 떠났다고 WP에 밝혔다. 다른 이웃은 스몰렌코프가 별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정원 관리에 주로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그는 스몰렌코프가 “나는 시간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망명 스파이가 러시아 외교관이나 공작원에게 노출될 위험이 큰 미국 수도에서 본명을 유지한 채 생활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직 CIA 요원 조지프 어거스틴은 “스몰렌코프는 ‘가능하면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아내와 자녀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으니 새 이름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CIA가 권장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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