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만 6번 들었던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 故 서옥렬씨 영결식 엄수

국민일보

사형만 6번 들었던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 故 서옥렬씨 영결식 엄수

입력 2019-09-14 18:13 수정 2019-09-14 18:14

추석 연휴를 앞두고 별세한 광주지역의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 고(故) 서옥렬씨의 영결식이 14일 엄수됐다.

통일애국열사 서옥렬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는 14일 낮 12시에 광주 동문 문빈정사 극락전 앞마당에서 ‘서 선생 민족통일장 영결식’을 열었다. 영결식은 민중 의례, 연보 낭독, 조사, 호상 인산, 조가,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통일·민주화·종교·오월 등 각계 60여 단체로 꾸려진 장례위원회는 ‘아내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품고 떠난 서씨를 추모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정길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광주전남본부 상임대표는 조사를 통해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그곳을 그리며 얼마나 많은 통곡을 하셨느냐”며 “당신의 통곡은 분단 조국의 통곡이며 당신의 분노는 냉전 시대에 사는 모든 이들의 분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통곡을 멈추고 분노의 열정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꾸려 한다”고 한 김 대표는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고문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리던 서씨는 지난 11일 오전 9시42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전남 신안 출신인 서씨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한국전쟁 발발 후 학도병으로 북한 인민군에 편입돼 참전했다. 휴전 뒤 북한에서 생활한 서씨는 1961년 부인과 자녀를 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가족들과 만난 뒤 다시 월북을 시도했다가 해병대 초소에서 체포됐다.

동생들을 포섭하고 정보 수집 등 첩보 활동을 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서씨는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1990년까지 29년 동안 복역했다. 구형과 선고를 합해 사형 소리만 6번 들어야 했던 서씨는 사상 전향을 강요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1990년 9월29일 출소 후 광주광역시에서 생활했던 서씨는 2015년까지 25년간 보호감찰법에 따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했다. 공직과 교직에 있던 동생들도 연좌제로 모두 쫓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에 있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기록을 전해주고 싶다는 뜻으로 전국의 민주화·통일·인권 운동 현장을 기록하고 연구하며 교육과 저술 활동도 이어왔다. ‘정치경제학의 기본’이라는 책을 내고, 남쪽 생활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토막일지’도 10여권을 냈다.

1993년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2007년 사망 당시 90세)씨의 송환 후 2000년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송환됐지만 서씨는 전향수로 분류돼 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그는 “내가 쓴 건 전향서가 아니다. 나가서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다”라며 억울해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압과 고문에 의한 전향은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서씨 등 북송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27명은 시민사회와 함께 송환촉구를 요구해왔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폐에 물이 차 올라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병마와 노환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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