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빨간 옷, 자살…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불렀던 괴담

국민일보

비 오는 날, 빨간 옷, 자살…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불렀던 괴담

입력 2019-09-19 16:09
1993년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인근 농수로에서 유류품을 찾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가 첫 사건 발생 33년 만에 특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화성 괴담’이 다시 떠돌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91년 4월 3일까지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발생했다. 여성 10명이 강간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으나 지금껏 진범이 잡히지 않아 장기 미제로 남았었다.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히 피하며 살인을 계속한 범인에 전국은 공포에 떨었다. 연인원 205만여명의 경찰이 동원됐음에도 범인이 잡히지 않자 화성에서 시작된 괴담들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네이버영화

“비가 오는 날 밖에 나가지 말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살인 사건이 비 오는 날 주로 일어난다는 괴담이다. 사건을 배경으로 제작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영향도 컸다. 영화 속에서는 사건이 비 오는 날 발생하며, 주인공들 역시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자주 등장했다.

옷 색깔에 대한 괴담도 있었다. “빨간 옷을 입지 말라”는 말인데, 이는 범인이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특정해 노린다는 소문 때문에 유명해졌다. 5~6차 사건 발생 당시 사건에 투입된 권영호 수원남부경찰서 수사과장과 그의 아내가 벌인 잠복 수사 일화에서도 이 괴담이 등장한다. 당시 권 과장의 아내는 지방청 행정 직원이었는데, 범인을 유인하기 위해 한밤중 빨간색 옷을 입고 등장했었다.

1988년 12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를 찾은 조종석 당시 치안본부장. 연합뉴스

사건을 둘러싼 괴담은 당시 범인으로 몰린 용의자 중 일부가 사망하자 더 크게 불어났다. 그 시절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는 과정에서 우범자나 동종 전과자를 잡아 폭행해 자백을 유도했다.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붙잡혀 고문당하고 억지 자백을 하는 일이 수차례 발생했다.

결국 용의자로 몰린 사람들이 자살하거나 고문 후유증 등으로 숨지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9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던 30대 남성은 1990년 3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병점역 철길에서 달리는 열차를 향해 뛰어들었다. 10차 사건 범인으로 의심받던 또 다른 30대 남성 역시 아파트 4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7차 사건 용의자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된 뒤 아버지 무덤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차 사건 유력 용의자로 현장 검증까지 마쳤던 19세 청년은 1997년 암으로 사망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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