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얼굴에 싹싹했던 아이, 트럭운전사로 일했다”

국민일보

“뽀얀 얼굴에 싹싹했던 아이, 트럭운전사로 일했다”

[르포] 화성 주민들이 기억하는 용의자

입력 2019-09-20 16:20 수정 2019-09-20 17:40
사진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씨(오른쪽)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인한 협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30여년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진안동(옛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20일 만난 노인들은 유력한 용의자 이모(56)씨를 ‘인사 잘하는 싹싹한 아이’로 기억했다. 그가 성인이 된 뒤에는 인근의 전기부품 공장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날 기자가 찾아간 이씨의 본적지이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장소인 진안동은 논밭이던 30여년전과 달리 신축 원룸이 밀집한 주택지구였다. 그의 본적지 주소 바로 옆에 위치한 노인회관에서는 노인들이 화성연쇄살인사건 뉴스가 방송되고 있는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사건 전 이씨를 기억하느냐’는 물음에 모두 “흔하게 생각하는 살인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럴 아이가 아니었는데…”라고 입을 모았다. 사건 현장 근처에서 살았었다는 A(72) 할머니는 “뽀얀 얼굴에 얼굴이 작았던 이씨는 동네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양손을 배꼽에 대고 ‘안녕하세요, 어디에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하는 싹싹한 아이였다”면서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데다 결혼까지 해 동네 사람들이 이씨의 집을 ‘OO(본명)네’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A할머니는 ‘이씨의 아내 혹은 다른 가족들을 기억하느냐’는 물음에는 입을 닫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 2차 사건 발생지 현재 모습. 연합뉴스

A할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이씨는 진안동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화성 밖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성인이 된 뒤에는 인근 한 전기부품 공장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했다.

주민들은 이씨의 어머니가 화성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B(70) 할머니는 “김씨가 지난 19일에도 노인회관에 얼굴을 비쳤다”면서 “노인회장까지 할 만큼 믿음이 가는 사람이지만 아들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 남들도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처제 살해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홀로 자신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씨의 아들인 손주를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한 후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이씨의 모습. 지난 18일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씨를 1986년 시작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특정했다. 엠빅뉴스 캡처

주민들은 사건 관련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힘들어했다. 진안동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C(76) 할머니는 33년 전 12월 3차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C할머니는 “경찰 어깨너머로 당시 살던 집에서 5분도 되지 않는 거리 농수로에서 젊은 여자가 속옷 바람으로 사망해 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면서 “TV에서 이씨의 고등학생 때 사진이 나오며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손을 떨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할머니도 “사건이 한창 벌어질 때는 ‘범인이 빨간 바지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아 동네 여성들이 모두 밝은색 바지를 버리는 소동이 일어났다”면서 “온 동네에 여성 시체를 퍼뜨려놓은 만큼 동네 지리를 잘 아는 이씨가 진범일 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수원=최종학 선임기자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9일 실시된 2차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전날 형사와 프로파일러 등 7명을 부산교도소로 보내 이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이씨는 자신은 화성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혐의를 일체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DNA가 발견된 5차 7차 9차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도 보관하던 물품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하고 있다.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경찰은 이씨를 경기남부경찰청 인근 교도소로 이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화성=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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