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장 집’, 뜨개실 샹들리에, 소가죽 빌딩…‘공예’라는 창을 통해 본 현대 조각

국민일보

‘모기장 집’, 뜨개실 샹들리에, 소가죽 빌딩…‘공예’라는 창을 통해 본 현대 조각

아시아문화전당, ‘공작인: 현대조각과 공예 사이’전

입력 2019-09-23 16:15 수정 2019-09-23 23:30
23일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관. 멀리서 보면 파랑 물감을 펴 바른 추상화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굵은 실로 직조한 카펫을 액자 틀에 넣은 것이 아닌가. 독일 작가 로스마리 트로켈은 이렇게 함으로써 아주 여성적이면서 민속적인 행위인 수공예를 가지고 서구 미니멀리즘의 사조 안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광주광역시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예'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현대 조각을 들여다보는 국제기획전 '공작인: 현대조각과 공예사이'를 하고 있다. 서도호의 작품 '서울 집/가나자와 집/베이징 집'(2012)와 중국 작가 류웨이의 작품 '커다란 개'(2010-2017)이 보인다. 아시아문화전당 제공

미술의 두 무기는 손(수공)과 머리(생각)이다. 현대미술에 와서는 이 두 가지가 분리되고 개념미술이 득세하면서 점차 손이 홀대받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현장에서 주목받는 조각가들의 작품 세계를 보면 여전히 만드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두 정체성이 녹아있다. 남성 변기를 뒤집어 높고 미술작품이라고 했던 마르셀 뒤샹조차도 “나는 장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작가에게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중요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14명의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 초청해 마련한 국제기획전 ‘공작인: 현대조각과 공예 사이’을 보러 갔다. 라틴어 ‘호모 파베르(Homo Faber)’에서 유래한 공작인의 개념을 가지고 ‘도구로서의 인간’을 동시대 미술로 풀어내는 전시다.

작가군이 쟁쟁하다. 한국 작가만 봐도 국제미술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40∼50대 작가들인 강서경, 서도호, 양혜규 등이 참여했다. 전시장 들머리는 ‘모기장 천’으로 만든 서도호의 설치 작품인 대형 집이 걸려 있다. 서울과 베이징 등 자신이 살았던 나라의 집을 담고 있다. 그는 천이라는 부드러운 소재를 써서 건축적 행위를 하면서 문화적 정체성과 이주에 관해 이야기한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받았던 중국 작가 류웨이는 소가죽을 풀무질해 펜타곤을 비롯해 유명 도시 건축물을 만들어 보여준다. 역시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인 중국 여성 작가 인슈전은 실과 천으로 휘감은 무기를 천장에 매달았다. 무기는 방송사 송출 탑 모양이어서 언론을 상징하며 끝에는 실제 칼을 꽂았다. 독일 작가 팔로마 파르가 바이스는 등나무로 남녀 모양의 인형을 제작했다. 그 공예적 미감이 주는 편안함 덕분에 작가가 고발하고자 하는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자연스레 느껴진다.
독일 작가 팔로마 파르가 바이스의 바구니 남자와 바구니 여자(2008).

이처럼 3관은 작품들이 광장에 설치된 것처럼 서로 영향을 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과 달리 4관은 작가별로 개별 부스를 마련했다. 작품마다 작가들이 설치 작업과 함께 벽지 작업을 병행해 각각의 집들이를 하는 기분을 준다. 양혜규 작가는 인공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각, 굵은 뜨개실을 엮어 샹들리에처럼 늘어뜨린 사람 모양 작품 등 그야말로 수공적 조각을 내놨다. 흔히 짚공예라고 하면 한국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작문화가 있는 모든 지역에서는 짚공예 전통이 있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류 문화의 특이성과 보편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양혜규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공간. 인공 짚, 실 등 수공예 재료를 사용한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른 방에서는 김범 작가가 딸기잼 병, 소금 통, 세제 통 등 일상용품 위에 종이 죽을 덧발라 만든 소조를 선보였다. 자연물인 수석에서 풍경을 찾듯이 일상용품을 추상 조각으로 재탄생시켜 ‘원래 뭐였을까’ 거꾸로 추측하는 재미를 준다.

베트남 작가 부이콩칸은 거대한 도자기와 목조 장식장을 내놨다. 문양에는 군인의 철모, 쇠사슬, 총과 칼 등이 숨어 있어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공예적 요소'는 현대 조각을 색다르게 읽을 수 있는 키워드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예술감독은 “작품들을 통해 현대의 조각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추적할 수 있다. 동시에 공예적 요소들을 통해 글로벌리즘, 사회정치적 이슈, 역사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2월 23일까지. 광주광역시=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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