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을 구슬 공예로 도배했던 그 작가 라이자 루, 한국 첫 개인전

국민일보

부엌을 구슬 공예로 도배했던 그 작가 라이자 루, 한국 첫 개인전

입력 2019-10-06 16:51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 라이자 루(50)는 1996년 발표한 ‘부엌’이라는 작품으로 미술계를 발칵 뒤집었다. 실물 크기 모형의 부엌 전체를 작은 구슬을 일일이 꿰어 뒤덮은 작품은 그가 혼자서 제작한 것으로 1991년부터 96년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구슬 수백만 개가 들어간 이 작업을 두고 평단은 ‘인내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작업’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한국 첫 개인전을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리만머핀 갤러리와 송원아트센터 등 인접한 2곳 전시장에서 동시에 하고 있다.
라이자 루 개인전 '강과 뗏목' 전시 전경. 리만머핀 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도 트레이드 마크인 ‘구슬 작업’은 계속됐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직접 구슬을 꿴 것이 아니라 남아프리카 콰줄루나탈 지역 줄루족 여성들과 협업을 했다는 점이다. 구슬 공예로 유명한 그 지역을 15년 전 찾아간 작가는 스튜디오에서 현지 여성들과 함께 작업했다. 그들이 구슬로 꿴 손수건만 한 조각을 가지고 작가는 다시 작업한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망치로 구슬을 깨뜨리기도 하고, 뜯어서 비워내기도 한다. 줄루족 여성들의 남긴 흔적 위에 자신의 흔적을 직조하는 것이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라이자 루.

“같이 작업하면 구슬이 또르르 구르기도 하고, 의자 끄는 소리가 나고,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나는 등 소리가 작업 속에 섞였다. 보는 것보다 듣는 소리가 더 컸다.”

작가는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작업 과정의 소리를 듣기 원하는 것 같았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묻는 작업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시명 ‘강과 뗏목’도 그런 의미를 담는다. 고대 인도의 우화에서 딴 것인데, 강을 건너기 위해 뗏목을 만든 남성이 강을 다 건넌 후 그 뗏목을 어찌할 것인지 되돌아본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변화는 과거 원색의 생생했던 색감이 무채색 계열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손수건 크기의 구슬 천을 캔버스 틀에 격자처럼 매달았다. 멀리서 보면 모노크롬의 추상화가 연상되는 작업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공예의 재료로만 여겨졌던 ‘구슬’을 순수 회화의 영역으로까지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듣는다.

바늘에 잉크를 찍어 끊임없이 원을 그리는 영상에는 자신이 작업하며 내는 노동요 격인 감탄사 ‘오∼ ’를 겹쳐지게 편집했다. 마치 오묘한 합창곡처럼 들린다. 11월 9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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