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엄마, 11·12살 형제는 이렇게 움직였다 [인터뷰]

국민일보

쓰러진 엄마, 11·12살 형제는 이렇게 움직였다 [인터뷰]

119 신고 후 직접 심폐소생술 한 초등생 형제

입력 2019-10-12 00:15 수정 2019-10-12 00:15
성열·수열 형제와 여동생. 아버지 이상배씨 제공

지난 8월 31일 오전 7시 대전 119 종합상황실로 한 소년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앳된 목소리의 첫마디는 “우리 엄마가 이상해요”였다. 그는 차분하게 주소를 불렀고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한 살 위 형은 학교에서 배운 심폐소생술 자세를 머릿속에 그리며 엄마의 가슴을 눌렀다. 열두 살, 열한 살 성열·수열 형제는 그렇게 엄마를 살렸다.

그날은 둘째 수열이가 축구 시합에 나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앉았는데 갑자기 엄마가 ‘컥컥’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빠는 3시간가량 떨어진 경기도 포천으로 일을 나갔다. 집에는 의식 잃은 엄마와 형제 그리고 네 살배기 막내 여동생뿐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들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었던 아빠 이상배씨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집사람이 원래 심장이 안 좋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 심장이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며 “당장 전화를 끊고 119에 신고하라고 했다. 멀리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형제는 아빠의 걱정보다 훨씬 더 차분하게 움직였다. 수열 군은 곧바로 119에 신고해 정확한 주소를 불렀다. 그런 다음 “엄마가 말을 안 해요” “엄마가 눈을 감고 누워 있어요” “엄마 턱이 이상하게 움직여요” “지금 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어요”라며 상태를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성열·수열 형제. 아버지 이상배씨 제공

전화를 넘겨받은 성열 군은 119 상황실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움직였다. 엄마를 반듯이 눕히고 의식을 파악한 뒤 코에 손을 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이어 스피커모드로 바꾼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려놓고 엄마의 가슴을 눌렀다.

국민일보가 확인한 당시 신고 전화 녹취록에 따르면 성열 군은 심폐소생술 과정을 설명하는 119 상황실 대원 말에 차례대로 행동했다. 그러면서 “눕혔어요” “(엄마) 옆에 앉았어요” “왼쪽 손바닥을 (가슴에) 놨어요” “(압박을)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수열 군은 엄마의 온몸을 주무르며 마사지했다. 4분 정도가 지난 뒤 엄마의 호흡이 희미하게 돌아왔고, 형제는 “턱이 움직여요. 숨을 쉬어요”라고 소리쳤다.

이씨는 “아이들이 지역 유소년 축구팀에서 뛰고 있는데 연맹에서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법을 배웠다”며 “그게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심폐소생술 기본자세를 알고 있던 성열 군이 상황실 안내에 빠르게 대응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신고 전화를 한 지 5분여 만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에 의해 엄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씨는 “아내가 깨어났는데 눈동자 초점이 없더라. 그만큼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올 뻔했다더라”며 “아이들의 대처가 워낙 신속해 다행이었다. 덕분에 상태가 빨리 호전됐고 5일 만에 퇴원해 지금은 99% 건강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더 심각해질 뻔한 상황을 막은 건 형제의 침착한 대응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때로는 어른들도 당황해 119에 전화한 뒤 울기만 하는 경우가 있다. 주소를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는 일도 종종 있다”며 이날 보여준 아이들의 행동을 칭찬했다. 이씨는 “평소에도 자기 할 일을 철저하게 잘해나가는 아이들”이라며 “똘똘하고 상당히 침착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면서 “아내도 ‘우리 애들이 날 살렸다’고 말한다”며 “부모로서 참 기특하고 고맙다”고 덧붙였다.

◆ 사고 당일 대전 119 종합상황실 통화 녹취 영상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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