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청주 여공사건 현장에서 탈출한 여성에 들어보니

국민일보

이춘재 청주 여공사건 현장에서 탈출한 여성에 들어보니

입력 2019-10-15 15:10 수정 2019-10-15 15:31

“하수도관에 끌려갔더니 젊은 아가씨가 숨져 있었습니다.”

1991년 1월 26일 오후 8시50분쯤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택지개발공사장에서 집으로 가던 김모(당시 32세)씨는 한 남성에게 붙잡혔다. 이 남성은 김씨의 스타킹을 벗겨 양손을 묶은 후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3돈)와 상의 주머니에 있던 현금 1250원을 훔쳤다. 김씨가 끌려간 지름 1.2m 정도의 하수도관에는 당시 방직공장 직원이던 박모(당시 17세)양이 숨져 있었다. 김씨는 범행 현장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김씨는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공사현장에서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와 와서 200m 정도 끌고 갔다. 하수도관에 집어넣었는데 옆에 아가씨가 누워있었다”며 “그 사람은 이미 숨진 상태였던 것 같다. 말도 못하고 입도 막혀 있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김씨는 “어린 애들만 생각하고 무조건 달려 나왔다”며 “그 아가씨한테 같이 뛰자는 말도 못하고 하수도관을 기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하수도관에서 탈출 한 후 복대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했다”며 “이후 경찰들이 매일 찾아서 힘들었고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받았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 남자는 손과 얼굴이 작고 아주 왜소한 체격이었다”며 “호주머니에 든 돈을 빼낼 정도로 손도 작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말한 젊은 여성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춘재는 9∼10차 사건 사이 4개월여간 청주에서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춘재가 같은 장소에서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이춘재는 범행 장소로 하수도관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이춘재는 10건의 화성사건 외 청주에서 1991년 1월 청주 여공 살인사건, 두 달 뒤인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을 저질렀다.

1991년 1월 26일 오후 8시30분쯤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공사 현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박모(당시 17세)양을 속옷으로 입이 틀어 막히고 양손을 뒤로 묶인 채 숨져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경찰은 3개월의 수사 끝에 박모(당시 19세)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지만, 법원 재판에서 박군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춘재는 두 달여 뒤 3월 7일 청주시 남주동 가정집에서 주부 김모(당시 29세)씨를 살해했다고도 털어놨다. 흉기에 찔려 숨진 김씨는 발견 당시 고무줄에 양손이 묶여있었고 옷으로 입이 틀어 막혀있었다.

이춘재가 저지른 청주 2사건 모두 그의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 범행으로 이뤄졌지만 당시 경찰은 화성 사건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남주동 사건 당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피해자 이웃집에 살던 대학생 정모(당시 21세)씨를 붙잡아 조사했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정씨의 지문이 나오지 않는 등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정씨를 풀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청주 남주동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지 약 한 달 뒤 이춘재는 화성 10차 사건을 저질렀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이 씨의 DNA가 검출된 화성사건의 3, 4, 5, 7, 9차 사건의 강간살인 혐의만 적용해 피의자로 입건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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