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미래교회 리포트] 창의적 사역으로 길을 만들라

국민일보

[이상훈의 미래교회 리포트] 창의적 사역으로 길을 만들라

입력 2019-10-21 11:00 수정 2019-10-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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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모습은 어떠할까? 급격한 변화를 넘어 파괴적 혁신이 넘쳐나는 시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전문가를 의지하고 나름의 정보를 통해 전망해 보기도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정확한 예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제이 새밋(Jay Samit)은 현대인들이 미래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적응력”과 “창의성”이라고 말했다.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혁을 이루려는 창조적 사람만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1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적응력과 창의성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파괴적 혁신이 발생하는 이 시대에 적응력을 기르며 창조적으로 사역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출발점은 어디여야 하는가?

첫 번째는 세상을 ‘선교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안목을 갖는 일이다. 조셉 자보르스키(Joseph Jaworski)는 예술가들이 가진 탁월한 재능을 언급하면서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라고 말했다. 언뜻 듣기에 이 말에는 어폐가 있어 보인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술가들은 상상력으로 가득 찬 집단이다. 그런데 그 상상력의 근원이 창작품의 ‘실제’를 예리하게 보는 눈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자신의 경험과 편견, 과거의 기억과 인상에 쉽게 매몰된다.2 그러나 탁월한 리더는 현실을 직시하고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린 상상력 만이 대중을 움직일 수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는 시대를 읽는 눈을 잃어버렸다. 교회는 세상의 변화와 흐름과 무관하게 과거의 일들을 반복한다. 의식 있는 성도들과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다음 세대가 사라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시대를 한탄하거나 떠나간 자들의 믿음 없음을 탓한다. 곡간이 텅텅 비어가는 데도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해오던 일들을 반복한다. 이렇게 안일한 사역을 지속할 때 교회의 미래는 굶주릴 수밖에 없다. 선교적으로 시대를 대면하고 대처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적응력’이다. 사실 선교학계에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적응의 문제가 중요한 의제였다. 물론 그 담론은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틀 안에서 이뤄져 왔지만, 과거 기독교가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을 때 만들어진 도식과 오늘날처럼 기독교가 주변부로 밀려 힘을 잃어갈 때의 이론은 그 기본 전제와 틀 자체도 도전을 받는다. 과거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형성된 이론 또한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할 때 한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성장하는 교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시대를 이해하려 할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놓여 있는 현 상황에 적응하려는 노력 또한 멈추지 않는다. 복음의 본질을 고수하되 복음을 접목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고대의 유산뿐 아니라 대중문화적인 요소까지 거룩으로 접목고 시도한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교회 운동을 연구하고 분석한 후 탐 사인(Tom Sine)이 주목한 모습이었다. 그는 영국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새로운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영국의 신세대 지도자들은 포스트모던 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이들은 관계와 경험을 중시하며, 예술에 관심이 많고, 명제 신학보다는 이야기 신학을 선호한다. 이들은 종족과 지역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3

과거로부터 전수되어 온 신학과 전통, 의식을 고수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대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할 뿐 아니라 적극적인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교회들을 보라. 그들은 “특정한 문화적 맥락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혁신적 방법을 찾고자 매진”하고, 실험적이고 예술적이며 이미지와 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고대의 상징과 세속 문화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모두 활용하는 다층적, 경험적 예배를 드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더 참되고 구체적이며 전인적인 신앙”으로 이끌려 최선을 다한다. 나아가 교회는 “관계적, 유기적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회정의, 화해, 피조 세계의 돌봄” 등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사인은 이 모든 것이 외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선교에 초점을 맞춘 교회의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4 과거를 넘어 세상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변용 시켜 선교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교회들이 생명력을 가진다.

세 번째는 “창의성”이다. 시대를 선교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다면 솔루션(solution) 역시 선교적인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선교적 접근은 언제나 창의적 사고를 동반한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 성경적 지식이 전혀 없는 이에게 복음을 전하려 한다면 전도자는 과감하게 그들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문화적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깊은 강도를 가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교회가 이 시대를 선교지로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사역은 창의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적 사역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무엇보다 창의적 사역은 다른 교회의 사역 모델을 모방해서 이뤄지지 않음을 기억하라. 얼마 전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한 교회에 갔을 때다. 그 교회는 지속적인 성장과 탁월한 사역으로 칭찬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교회였다. 나는 그 교회를 배우는 내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교회의 조직과 시스템, 규정과 문화가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험을 받아들이고, 소그룹을 통해 평신도 목자와 리더를 세우고, 전도와 선교, 차세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교회. 지속적으로 교회를 분립하고 작은 교회와 목회자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교회. 그래서인지 그 교회는 자녀들로 구성된 차세대 비율이 어른 성도들과 맞먹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더 나아가 도시에 거하는 한인 인구의 10분의 1 가까이가 이 교회 성도일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을까 의아할 뿐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교회를 개척한 담임 목회자의 탁월한 비전과 치밀한 계획, 교회를 위한 헌신과 눈물이 있었다. 교회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목회 철학과 DNA가 성도들로 하여금 사역의 주체가 되게 했다. 거기에 직분을 받을수록 더 깊은 봉사와 헌신을 감당하는 구조, 세계 선교와 지역 사회를 섬기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일들, 성도와 목회자들이 행복한 동행을 하는 교회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었다. 그 비밀이 궁금했다. 담임 목사님에게 이렇게 건강한 교회가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교회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나가면서, 우리는 다른 교회나 시스템을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경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시대에 대응하며 복음 중심의 교회가 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일의 중심이 되었을 때 조직과 문화, 공동체가 건강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창의적 사역은 모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세상 기준이 아닌 성경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세우고 훈련하고 살아가는 문화를 만들 때 교회는 창조적 공동체가 된다. 자신의 부르심과 은사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는 일이 자연스럽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에 집중하려 할 때, 성령은 창조적 사고와 방법을 알려 주신다. 결국, 창의적 사역의 근원은 복음과 성령님이심을 깨닫게 된다. 살아계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창조적 영성을 깨워 그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게 하신다. 그분이 행하시고 이끄심을 기억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각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창의적 사역은 성도들의 잠재력이 터져 나올 때 이뤄질 수 있다. 더그 패짓(Doug Pagitt)은 ‘창의적 시대’(inventive age)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일종의 오너십(ownership)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제공되는 것을 소비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 자기 자리를 만들고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앞에 놓여 있는 미래에 참여하기 원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시대의 젊은 신앙인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회를 찾는다. 당당히 질문하고 도전하고 모험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미래의 교회는 자신의 신앙 가치와 비전, 꿈과 열정이 표현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여기서 성도들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은사와 열정을 마음껏 발휘하고 협업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5

그런 의미에서 창조적 사역은 한 사람의 탁월한 능력이 교회 전체를 이끌어 가는 그림이 아니다. 창조적 상상력과 비전이 일상화되고 내재한 꿈과 열정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열린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깊고 살아있는 영성이 경험되는 공동체를 사람들은 목말라 한다.

교회도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가? 그렇다. 더는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과거의 성공에 머물고, 과거의 습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선교적 안목을 가지고 시대를 읽고 어떻게 복음을 문화적 코드를 사용해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회복하기 원한다면 먼저 세상을 배우고, 소통을 이루고, 문화를 거룩함으로 입히는 영성을 발전시키라. 깊은 영성으로 시대를 일깨우고 함께 하는 기쁨과 여정을 창출하라. 창조적 영성으로 세속을 거룩함으로 덧입히라.

거기에 길이 있다. 시대를 읽고 선교적 안목을 통해 창의적 사역을 시도하라.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힘입어 시대의 장벽을 돌파하는 역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1] Jay Samit, 파괴적혁신(Disrupt You),이지연역,(서울: 한국경제신문, 2018), 7.
[2] Joseph Jaworski, 리더란무엇인가(Synchronicity: The Inner Path of Leadership), 강혜정역, (서울: 에이지2010), 29.
[3] Tom Sine, “Brave New Worldview,” Leadership Journal, Fall 2000, 53;하나님나라의모략(The New Conspirators), 박세혁역, (서울: IVP, 2014),재인용,42.
[4] Tom Sine,하나님나라의모략, 47-47.
[5] Doug Pagitt, Church in the Inventive Age, (MN, Sparkhouse Press, 2010). 30-33.


이상훈 (미성대학교(America Evangelical University)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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