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친구들의 놀림에 화가 나서 폭력을 써요

국민일보

[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친구들의 놀림에 화가 나서 폭력을 써요

공격에 공격으로 맞서지 않는 것을 깨달도록 해야

입력 2019-10-22 08:49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인 D는 친구들과의 다툼이 잦다. 학교에선 ‘싸움 닭’이라며 소문이 났다. 교사들도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었다. 처음엔 외모가 통통한 걸 빌미로 아이들은 ‘돼지’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아이들이 이에 동조했다. 이럴 때 마다 아이는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공격이었을 뿐 결코 ‘공격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다음은 병원에서 치료자와의 대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다.

치료자 : 이번에 학교에서 싸움에 말려들었구나.

D : 나한테 함부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어야 해요. 복도에서 애들이 저를 보고 수군거리거나 ‘돼지’라고 놀려요, 그것도 여러 명이.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안 넘어갔어요. 안 그러면 저를 무시할 거거든요.

치료자 : 공격당했다고 느끼면 저항한다는 거지. 덫에 갇힌 거 같은 느낌이구나.

D : 네. 저를 욕하고 놀리기도 하지만 가족들까지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요. 한두명이 그러는 것도 아니고.....

치료자 : 레슬링에서 ‘목 누르기’ 기술이 뭔지 아니? 상대방이 너의 목을 잡았을 때 네가 버둥거릴 수로 너를 더욱 옭죄는 기술이지. 빠져나오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빠져 나오기 더욱 힘들어지지.

D : 저는 그냥 귀찮게 하는 아이들을 못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치료자 : 네가 그렇게 하니 아이들이 너를 놀리지 않았니?

D : 아니요. 걔네들은 구제 불능이예요. 점점 심하게 놀리고 점점 놀리는 아이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치료자 : 맞아! 그러니 아까 말한 ‘목 누르기’ 기술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써봐야지. 어떻게 하면 ‘목 누르기’ 기술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D : 저는 힘을 더 키워 싸워서 이겨야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치료자 : 이기려고 싸웠더니 상황이 더 나빠졌다며? 네가 싸울수록 더욱 세게 너를 조이는 ‘목누르기’ 기술을 걔네들이 쓴거든.....

D : 그렇다고 항복할 순 없어요. 그럼 더 저를 무시할 걸요?
치료자 : 항복하라는 게 아니야. 걔네들의 ‘목 누르기’ 기술을 네가 역이용하라는 거지. 어떻게 하면 걔네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D : 아~ 알겠어요. 머리를 써서 걔네들이 복도에서 소리 지르고 저를 공격하는 걸 선생님들이 볼 수 있게요. 방과 후 시간에는 선생님들이 보지 못하니 말려들지 말구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그 아이들이 나쁘다는 걸 보여 줘야겠어요.

이런 대화를 통해 D는 대응 전략을 가지고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화를 폭발해서 싸우고 야단맞고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히기 대신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목조르기’ 기술에 걸려 들었을 때는 빠져 나오려 힘을 쓸수록 더욱 심하게 옥조여 오기 때문에 힘을 빼고 상대의 움켜 쥔 손과 맞서 싸우지 않는 것이 방법이라는 걸 이해한다.

비유를 통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아이로 하여금 직접 대응하지 않고, 공격에 공격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 결코 ‘약함’이나 ‘찌질함’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한다. 문답을 하면서 스스로 문제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게 하는 것을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라고 한다. 이래라 저래라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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