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해 유전자 달라도 남편 친자식”…대법 판결 이유는

국민일보

“인공수정해 유전자 달라도 남편 친자식”…대법 판결 이유는

입력 2019-10-23 17:47
사진=픽사베이

1985년 결혼한 A씨는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부부는 고심 끝에 제3자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1993년 첫 아이가 태어났고 A씨 부부의 자녀로 호적에 올랐다. 4년 뒤인 1997년에는 갑작스럽게 둘째가 생겼다. 혼외관계였다. A씨는 이를 알고도 둘째 역시 친자식으로 출생신고했다.

결혼한 지 28년 만인 2013년, 부부는 갈등을 겪다 협의이혼을 신청했다. 첫째 아이가 스무살, 둘째가 열 여섯살이 된 해였다. A씨는 이혼 과정에서 뒤늦게 두 자녀 모두 친자식이 아니라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민법상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아이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 ‘친생자로 추정되지 않는 자녀’에 대해선 기한에 상관 없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통해 법적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 반면 ‘친생자로 추정되는 자녀’는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제3자 정자로 인공수정해 태어난 아이는 법률상 친자식일까. A씨 사건은 하급심을 거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이어졌다. 과학기술의 발달, 가족관계의 변화 등으로 친생 추정 예외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제기 속에서 대법원은 지난 5월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1·2심은 모두 A씨의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보고 각하 판결을 내렸다. 친자식 여부에 대한 구체적 판단은 재판부마다 조금 달랐다. 1심은 A씨 부부가 동거했기 때문에 두 자녀 모두 친생자로 추정된다고 봤다. 부부가 같이 살지 않는 등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친생 추정을 부인할 수 있다는 1983년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다.

2심은 A씨가 인공수정에 동의했기 때문에 첫째 아이는 친생자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둘째에 대해선 “유전자형 배치의 경우에도 친생자 추정의 예외가 인정된다”며 친자식이 아니라고 봤다. 다만 둘째의 경우 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양자친자 관계는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23일 대법원이 내린 최종 결론은 “유전자가 다르더라도 법적으로는 친자 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씨 상고를 기각하며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하고 이러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됐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 “친생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는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전자 검사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친생추정의 예외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2년 기한이 지나지 않았다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향후 관련 판결에선 ‘언제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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