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개구충제 찾겠냐만…” 폐암환자에게 펜벤다졸 물어보니

국민일보

“오죽하면 개구충제 찾겠냐만…” 폐암환자에게 펜벤다졸 물어보니

입력 2019-11-01 00:15 수정 2019-11-01 00:15
폐암 말기 투병 중인 개그맨 겸 가수 김철민이 복용 사실을 알리면서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이 암 환자들뿐만 아니라 보건당국과 의료계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전해진 전문가들의 의견은 확고했다. 펜벤다졸의 항암효과는 입증되지 않았고, 따라서 복용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복용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런 조언이 절박한 환자들에게는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김철민의 투병기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아니겠나” “환자의 선택”이라는 식의 응원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이건주(73)씨는 펜벤다졸에라도 매달리려는 암 환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그가 지난달 4일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 동물구충제가 먹어도 되는건지, 사람 몸에 독이 되는 건지 알 수 없고, 식약처도 먹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신이 내린 특효약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그가 펜벤다졸 복용에 찬성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씨는 지난 3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펜벤다졸 복용에 반대”라며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자신의 국감장 발언은 면역항암제(암세포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해 공격하도록 하는 신약)에 보험 적용이 안 돼 절박한 환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에 몰린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 먹는 게 좋겠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씨에게 펜벤다졸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던 이건주(73)씨의 모습. 이씨는 당시 폐암 말기임에도 봉사에 나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건주씨 제공

“오죽하면, 그 심정 알지만…”

이씨는 2016년 폐암 4기를 진단받았다. 2001년 위암 3기를 진단받고 위 절제수술을 한 뒤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후 다시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벌써 4년째 투병 중이다. 그 역시 힘겨운 상황이지만 펜벤다졸 복용만큼은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국감에서 내가 한 말에 악플이 달렸다. 펜벤다졸을 먹는 데에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안하니까 시비를 걸더라. 펜벤다졸을 먹는 사람들은 삶의 막바지 단계에서 해보려는 건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러는 것(이라 이해한다)”이라며 “복용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펜벤다졸 복용을 택한 사람은 오죽 절박한 심정으로 그러겠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블로그에는 “그냥 암 걸려 죽어라. 너가 진짜 암 환자가 맞냐”는 등의 입에 담기 어려운 악플도 달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말하진 않는다고 했다. 환자들이 얼마나 다급한 마음인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정을 이해하는 것과 조언을 하는 건 다른 일이다. 이씨는 “항암효과가 있다는 민간 약재들, 신약들도 반짝 주목을 받았다가도 객관적인 검증을 받지 못해 도태된 것들이 많다. 암 환자여서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듣고 많이 안다. 그래서 펜벤다졸도 효과가 검증되기를 기다려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물론 시간이 없고 다급한 환자들에게는 직접 먹지 마라,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카레처럼 항암효과가 검증된 자연약재들도 많은데 왜 구태여 펜벤다졸을 먹으려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상시험을 다 거친 1억원짜리 신약을 써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통계상 1~2년 정도 생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암)초기인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몰라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 병이 중하면 체력이 못 당한다”며 “신약도 그런 마당에 펜벤다졸 같은 약을 먹는 건 정말 확률이 낮은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씨는 펜벤다졸을 다루는 유튜브에는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펜벤다졸을 다룬 유튜브 중에는 장난삼아 먹어라, 마라 가볍게 말하는 영상들도 있더라. 어떤 논리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용도 허접했다”며 “장삿속으로 광고 수익을 올리려는 사람들까지 보이더라. 논리적 근거라도 갖추고 권하든 말든 해야할텐데 가볍게 얘기를 하니 (화가 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이건주씨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던 날 손녀들과 함께 병원에서 찍은 사진. 이건주씨 제공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약이란

이씨는 2001년 위암 3기를 진단받았을 당시 위를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받으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의사는 짧으면 6개월, 길어야 2년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잘해야 2년 산다는데 독성이 강한 항암치료까지 해야겠나 싶어서 안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신앙생활을 하며 암을 견뎌냈다. 그리고 2016년 다시 폐암을 진단받았다.

그는 폐암 4기를 진단받고 주치의와 대화하던 중 임상시험 얘기가 나와 흔쾌히 수락했다고 했다. “주치의가 임상을 해보겠냐고 해서 무슨 약인지도 안 물어보고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효과를 못 봐도 나중에 환자들한테 도움이라도 된다면 모르모트(실험용 쥐)라도 되겠다는 심정으로 (수락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지난 2년간 경험한 임상시험이 생각보다 더 엄격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시험을 쉽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대상자가 되는 조건도 까다롭고 샘플을 채취하는 것조차도 정해진 절차대로 해야만 인정이 되더라”며 “내가 하는 임상은 미국 임상센터가 취합해서 관리하는데, 다양한 인종과 환자의 다양한 상태를 감안해 모니터링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신약이 시판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약품 사용을 승인하는 거더라. 펜벤다졸 같은 약을 당국이 못 먹게 하는 게 이해가 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엄격한 과정을 거쳐 검증되지 않은 걸 왜 먹어야 하나. 그 얘기를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2년의 임상 과정에서 약품에 대한 내성이 생겨 독한 약품으로 바꿨지만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고 했다.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고서 의사가 “같은 사람이 맞냐”고 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고, 지난달 22일에는 호전된 상태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난달 4일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던 날 이건주씨의 모습. 이건주씨 제공

암 환자가 개 구충제에 눈 돌리는 이유

이씨는 자비로 약을 복용할 경우 약값으로만 1년에 1억원이 든다는 면역항암제를 보험 적용받기 어려운 복지체계에 대한 비판으로 초점을 옮겼다. 면역항암제가 지난해 급여화됐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려면 1차 치료제인 표준항암제로 3번 이상 치료를 해본 뒤에 결과가 좋지 않아야 2차 치료제인 면역항암제에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표준항암제를 3번 써서 치료를 받으면 4~5개월이 걸린다. 환자들은 그 사이에 골든타임을 놓친다. 체력도 떨어지고 약효도 떨어지고. 그 후에 면역항암제를 쓴들 소기의 효과도 거두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 자매의 사연을 들려줬다. 폐암 환자인 어머니에게 면역항암제를 쓰면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에 자비로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표준항암제로 3번 이상 치료를 받아야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탓에 앞으로도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씨는 “이러면 2~3년만 지나면 집을 팔아야 한다. 그렇게 메디컬푸어(medical poor·의료비 탓에 가난해진 사람)가 되는 것”이라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처한 현실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예산이라는 팬케이크를 두고 싸우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여러 사람에게 건강보험 예산을 나눠주겠다는 ‘문재인 케어’의 방향과 달리 암 환자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어 마찰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가 지난 국감에서 “왜 우리가 독이 될지도 모르는 동물 구충제까지 먹겠느냐”고 호소한 것은 암 환자들의 처절하고도 절박한 상황을 알아달라는 외침이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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