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불매 #국민청원… 수험생 분노 유발한 ‘수능샤프’ 사태

국민일보

#일본불매 #국민청원… 수험생 분노 유발한 ‘수능샤프’ 사태

입력 2019-11-08 14:53 수정 2019-11-08 15:02
지난달 15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교 3학년 수험생이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를 준비하며 손목시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8일 수험생들이 모인 입시 커뮤니티에 불이 붙었다. 시험 당일 수험생 전원에게 지급되는 필기구인 일명 ‘수능 샤프’의 모델이 9년 만에 바뀐다는 소식 때문이다.

일부 수험생들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로 몰려가 소문 확인에 돌입했다. 그러나 평가원 측은 이들의 모든 문의글에 “보안상의 이유로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달았다.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자 급기야 “새로 바뀐 수능 샤프 모델명을 공개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2006년 #부정행위… ‘수능 샤프’ 뭐길래

수능 샤프란 평가원이 2006학년도 수능부터 시험 당일 수험생 전원에게 제공해온 샤프다. 2005학년도 수능 당시 개인 물품을 이용한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만든 보완법 중 하나로 등장했다. 출신학교를 시험장으로 배정받지 못하게 하거나 답안지에 필적확인란을 만들어 넣은 것도 모두 같은 해 실시된 제도들이다.

2006학년도부터 2010학년도까지 필기구 전문인 A업체가 수능 샤프 공식 납품을 맡아왔다. 그러다가 2011학년도 B업체로 한 차례 변경됐었다. 그러나 당시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 사이에서 “샤프심이 자주 부러져 시험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학생들의 항의가 받아들여져 결국 다음 해인 2012학년도부터 2019학년도까지 A업체가 수능 샤프를 다시 만들어왔다.

수능 샤프 사태 부른 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다?

이번 논란에 불이 붙은 건 지난 8월 평가원 문의 게시판에 등장한 게시글 하나로 시작됐다. 글쓴이는 “현재 수능 샤프로 납품되는 A업체의 샤프는 내부 구조가 일본 필기구 회사의 ODM(제조업자개발생산)으로 만들어진다”며 “수능 샤프는 국산 제품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남겼다. 전국적으로 퍼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따른 지적이었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이에 평가원은 보안상의 이유로 상세한 답변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의식한 평가원이 수능 샤프 모델을 바꾼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여기에 한 수험생이 A업체에 문의한 이메일 내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하자 소문은 사실이 됐다.

해당 게시물에 따르면 이 수험생은 A업체에 “올해도 평가원에 수능 샤프를 납품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라며 메일을 보냈다. A업체는 “올해는 아닙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이어 A업체는 “2016~2010학년도, 2012~2019학년도까지 13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샤프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찬란한 미래를 응원합니다”라는 공지를 내놓기까지 했다.

“일부러 손에 길들였는데…” 수험생이 분노하는 이유

새로운 수능 샤프의 등장이 확실해지자 일부 수험생들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올해도 당연히 A업체의 샤프가 지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시판되는 A업체 샤프로 수능 공부를 해왔던 이들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은 수능 전 일정 기간동안 수능 당일 환경과 시험 시간, 문제풀이 패턴을 재현한다. 실제 수능 상황을 반복해 체험하며 익숙하게 만들어 긴장감을 낮추려는 것이다.

수능 샤프 소식에 분노한 것 역시 이같은 이유로 시판되는 A업체 샤프를 사 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입시 커뮤니티에는 “손에 익은 샤프로 문제를 풀어야 잘 풀린다” “1년 동안 같은 샤프로 공부해왔는데 화가 난다”는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다.

“수능 샤프 뭐냐” 빗발치는 불만에… 단호한 평가원

평가원 홈페이지 문의사항 게시판에는 수능 샤프에 대한 글들이 다수 게재됐다. 여기에는 수험생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의 불만과 공지를 해야 했다는 지적이 담겼다.

한 네티즌은 “지금까지 많은 수험생이 기존 수능 샤프로 공부해왔는데 아무런 얘기 없이 수능 당일날 바뀐 샤프로 시험을 봐야 한다면 당황스러울 것”이라며 “다른 샤프는 다들 소리도 크고 그립감도 불편하다는 얘기가 많다. 바뀌는 게 사실이라면 얼른 공지해주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평가원 문의게시판 캡처

평가원 문의게시판 캡처

온라인상에서는 또 다른 문구사인 C업체가 이번 학년도 수능 샤프 납품을 맡게 됐다는 루머가 등장했다. 심지어 한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2020 수능 샤프 공식 지정’이라는 문구가 내걸린 샤프가 판매돼 혼란을 더하기도 했다. 평가원 문의 게시판에는 루머 속 샤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를 반대하는 글도 등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새로 바뀐다는 C업체 샤프는 뒷부분을 누를 때 많이 시끄럽다”며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꼭 시끄러운 샤프를 줘야만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바뀌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점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평가원 문의게시판 캡처

평가원 문의게시판 캡처

그러나 평가원은 수능 샤프와 관련된 모든 글에 같은 답변을 남기고 있다. 평가원 측은 “수능 샤프의 제조사 및 기종 관련은 보안 사항”이라며 “공개적으로 알려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답했다.

“민감한 문제… 모델명 밝혀라” 국민청원 등장

평가원의 침묵에 들썩인 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었다. 이곳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샤프’ 제품명 공개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지난달 21일 올라왔다. 청원자는 “학생 대부분에게 수능은 평생 단 한 번의 기회이기 때문에 당일에는 주변 환경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며 “시험장의 분위기, 감독관의 태도, 아침에 건네받은 사탕 봉지, 부모님이 싸주신 점심 도시락 같은 사소한 요소들이 그날 학생들의 컨디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이어 “학생들은 문제풀이 시 중요한 부분을 직접 표시하며 읽거나 풀이 과정을 시험지에 손으로 써 내려간다”며 “제공되는 필기구 중 샤프를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샤프가 사용될 것인가 하는 것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가원은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필기구에 관한 정보를 일체 함구하고 있다”며 “수험생들에게 시험 중 커다란 불편이 야기될 수도 있고 나아가 학생들의 대입 결과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평가원의 태도는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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