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스물하나 자폐증 아들의 세상이 바뀌던 날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스물하나 자폐증 아들의 세상이 바뀌던 날

입력 2019-11-09 00:30
이하 케리 블로흐 트위터

엄마에게는 말이 조금 어눌한 아들이 있습니다. 불임 판정을 받았던 그가 마흔이 다 돼 얻은 소중한 아이입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유난히 귀했던 아들이라 애정이 남달랐다고 해요. 자식이 당신 인생의 전부가 될 무렵 아들이 자폐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4살, 가장 예쁜 나이였습니다. 엄마는 세상에 분노했지만 이내 받아들였고 그 아들은 어느새 21살의 청년이 됐습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미국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케리 블로흐(61)와 아들 데이비드 블로흐 모자입니다. 데이비드는 4살 무렵 스스로 말하기를 멈췄습니다. 여러 번 말을 시켜야 겨우 단어 하나를 내뱉었고, 그마저도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도 당연히 할 수 없었습니다.


왜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올까요. 머지않아 데이비드는 희소병인 중증면역결핍증까지 앓게 됩니다. 면역 체계가 제 기능을 못 해 병에 걸리기 아주 쉬운 상태가 된 겁니다. 때문에 데이비드는 사람들과 격리된 상태의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데이비드는 방 안에 틀어박혀 풋볼 경기에만 몰두했습니다. 케리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지내왔고, 익숙해진 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대로라도 좋으니 더 이상 아픈 곳 없이 자라기만을 바랐던 엄마는 최근 또 한 번 눈물을 쏟았습니다. 지난달 30일, 데이비드가 태어나 처음으로 던진 질문 때문입니다.

“Would someone like me?”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데이비드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지요. 그동안 아들의 마음을 몰라줬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몰려왔습니다.


케리는 SNS에 이날 있었던 일을 써내려갔습니다. 그는 “아들은 사랑 받고 싶어 했고 친구를 원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엄마의 후회와 데이비드의 간절함이 전해진 것일까요.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케리의 SNS를 본 전 세계 사람들이 데이비드의 친구가 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데이비드에게 런던에 친구가 있다고 전해주세요” “데이비드 나는 너를 사랑해. 우린 친구야”라며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글들은 1만여개를 넘어섰습니다. 심지어 데이비드가 응원하던 풋볼팀 ‘잭슨빌 재규어스’ 선수들은 직접 그를 만나 경기 장비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케리는 SNS에 이들을 향한 고마움과 함께 데이비드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그는 “아들과 함께 메시지 하나하나를 모두 보고 있다”며 “데이비드가 ‘예쁘다’ ‘좋다’는 단어를 반복하며 미소짓더라”고 썼습니다. 평생 아들이 그렇게 환히 웃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요. 또 데이비드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감사 인사도 공개했습니다.

엄마와 아들은 ‘친구 신청’을 해준 모든 사람에게 답장을 약속했습니다. 몇 달이 걸리더라도 꼭 해내겠다고요. 좁고 답답하기만 했던 데이비드의 세상은 수천명의 마음이 배달된 바로 그 날 바뀌었나 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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