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에도 불붙인 홍콩시위…지지vs비판 대자보 충돌·훼손

국민일보

고려대에도 불붙인 홍콩시위…지지vs비판 대자보 충돌·훼손

입력 2019-11-12 20:19
12일 오후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정경대 게시판에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작성한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대자보와 고려대 중국 유학생 모임이 작성한 시위 반대 대자보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부터 이어진 홍콩 민주화 시위의 불씨가 고려대에까지 옮겨붙었다. 캠퍼스 내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잇달아 붙는 가운데 이를 훼손하는 중국인 학생을 봤다는 목격담까지 이어지면서 총학생회가 논란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12일 고려대 재학생·졸업생 등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붙은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전날 오후 훼손된 것을 목격했다는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훼손된 대자보는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11일 작성한 ‘홍콩 항쟁에 지지를!’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대자보에는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으며 홍콩 시위대의 요구는 정당하다는 주장 등이 담겼다.

11일 저녁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붙어있는 모습(왼쪽)-해당 대자보가 훼손된 채 발견된 모습. 연합뉴스

고파스에 글을 남긴 한 이용자는 “(찢어진) 대자보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엉킨 채 정경대 후문 쓰레기통을 굴러다니고 있었다”며 “홍콩 시민의 요구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맞대응하는 대자보를 써야지”라고 비판했다. 다른 이용자는 “중국인 한둘이 화난 목소리로 (말하며) 대자보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봤다”고 주장했다.

다만 실제로 이 대자보를 중국 국적의 학생들이 훼손한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대자보 훼손 행위 비판 글. 400여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대나무숲 캡처

고려대 내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의 훼손 논란을 두고 이를 비판하는 의견은 대나무숲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올라온 게시글은 “더 이상 보고 참을 수 없다”며 “중국학생들의 대자보 훼손을 그저 보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닌 건 아닌거다. 홍콩을 지지하고 말고를 떠나 지극히 저열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어떤 사상 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자유대한민국 아래 있는 대학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숭고한 가치”라며 “더 이상 표현의 자유를 자국의 이득을 위해 훼손하지 말라. 이곳은 자유와 민주의 나라 한국이다. 선을 지키며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논란이 학내에서 점차 커지자 고려대 총학생회는 ‘대자보 훼손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합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냈다. 총학은 “11일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부착된 대자보가 세 차례에 걸쳐 의도적으로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고려대는 각각의 구성원이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다. 고려대 내에서 말하지 못하는 성역은 없으며 모든 구성원의 발언은 존중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전한 토론의 장 유지를 위해 자신과 다른 견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탄압하는 비겁한 행위는 중단하고 당당하게 글로써 반박하기를 바란다”며 “향후 대자보 훼손 행위가 반복될 경우 고려대 총학은 본 사안을 엄중히 대응해나갈 것임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12일 오후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경대 인근 게시판에 홍콩 시위 찬반 대자보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은 이날 오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다시 부착했다. 이후 게시판에는 홍콩 시위를 규탄하는 대자보도 붙었다. ‘고려대 중국 유학생 모임’은 ‘민주인가 폭행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홍콩 시위대가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학생들이 이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옆에 붙이자 일부 학생이 “홍콩 시위가 왜 불법이냐”고 반발하면서 잠시 소란이 빚어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늦은 오후에는 한글과 중국어, 영어로 쓰인 ‘홍콩사태에 관한 해명’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도 새롭게 붙었다. 중국인 유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는 “어떤 개인 혹은 단체든지 민주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잘못된 생각을 갖고 우리 민족 내부를 파괴하는 그 어떤 일도 절대 찬성할 수 없으며 홍콩 독립을 시도하는 이런 잘못된 행위를 강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12일 오후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경대 게시판에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작성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를 지나가던 학생들이 멈춰선 채 읽어보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게시판에는 ‘홍콩 민주항쟁 지지합니다 프리(Free) 홍콩!’ ‘민주주의는 정상국가의 상식’ ‘홍콩 시민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 등의 응원 문구가 적힌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수십장 붙어있다. 반면 ‘홍콩 폭동의 본질은 테러리즘이다’ ‘왜 홍콩의 자유를 한국에서 말하느냐(Why Free Hongkong in Korea)’ 등 홍콩 시위를 비판하는 내용의 포스트잇도 일부 보였다.

한편 홍콩 시위를 두고 국내 대학가에서도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연세대에서도 고려대와 비슷한 상황이 앞서 발생했다. 서울대에서는 홍콩 시민들을 향한 응원 문구를 적을 수 있도록 설치한 ‘레넌 벽’이 훼손되는가 하면 홍콩 시위를 비판하는 메모들도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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