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은혜 잊은 적 없었다”… 19년 만에 빵값 갚으러 온 백발 여성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은혜 잊은 적 없었다”… 19년 만에 빵값 갚으러 온 백발 여성

입력 2019-11-14 00:10
19년 만에 알리시아를 찾아온 여성과 과거 외상으로 빵을 구입했던 장부 노트.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 기사 캡처

19년 전 빵값을 갚으러 찾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르헨티나 언론에 최근 보도됐습니다. 아르헨티나 투쿠만주의 알데레테스에서 ‘라페를라’라는 제과점을 운영하는 알리시아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된 것입니다.

알리시아는 지난 2001년 다른 동네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 여성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알리시아에게 외상으로 빵을 줄 수 없냐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여성은 실업자였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외환위기가 폭발하기 직전으로 경제난이 심각했습니다. 경기가 어려운 시기라는 걸 잘 알고 있던 알리시아는 여성에게 흔쾌히 빵을 내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외상으로 빵을 받으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 여성은 어린 고아 4명을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여성은 “아이들에게 아침에 빵과 마테차(남미의 전통차)라도 먹여야 하는 데 돈이 없다”면서 “장부를 만들어 빵을 외상으로 주면 꼭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알리시아는 그날 이후 여자에게 외상으로 빵을 나눠줬습니다. 여성이 빵을 가져갈 때마다 장부에 기록을 남기기로 했지만, 기록을 남긴 사람은 알리시아가 아닌 빵을 가져간 여성이었습니다.

알리시아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빵값은 1㎏에 2페소(당시 환율로 약 1500원) 정도로 큰돈이 아니었다”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뜻으로 장부를 쓰지 않았지만, 빵을 가져가는 여자는 꼭 그날그날 장부에 외상값을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알리시아가 지금의 장소로 가게를 옮기게 되면서 여자와의 외상 거래는 끊겼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리시아는 자신이 외상을 준 사실도 까맣게 잊고 말았죠.

그런데 올해 알리시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9년 전 빵을 가져가던 그 여성이 옛날의 외상장부를 들고 가게를 찾아온 겁니다.

이 여성은 “오래된 빚을 갚으러 왔다”면서 알리시아에게 장부를 펼쳐 보였습니다. 세월과 함께 그녀의 머리카락은 빛이 바랬지만 알리시아는 단번에 그 여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자는 “그때 외상으로 빵을 얻지 못했다면 어린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현찰로 외상값을 지불했습니다. 그는 “19년 동안 은혜를 잊은 적이 없다. 이제 빚을 갚게 돼 정말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알리시아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19년 전 외상을 갚으러 이전한 곳까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어디나 존재한다는 걸 새삼 실감합니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영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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