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다시 등장한 독재정권…형에 이어 동생까지 대통령

국민일보

스리랑카에 다시 등장한 독재정권…형에 이어 동생까지 대통령

입력 2019-11-17 16:19
이번 스리랑카 대선에서 승리한 고타바야 라자팍사(70·왼쪽)와 그의 형이자 전 대통령인 마힌다 라자팍사(74). 연합뉴스

스리랑카에 다시 독재정권이 등장했다. 2005년 형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 이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동생이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됐다. 이들 가문은 대통령, 국방부 장·차관, 국회의장 등 정치권 요직에 두루 포진해있다.

16일(현지시간) 치러진 스리랑카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타바야 라자팍사(70) 전 국방부 차관이 당선됐다. 고타바야는 ‘스리랑카의 독재자’로 불린 마힌다 라자팍사(74)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국회의원, 농업부 장관 등을 역임한 D.A. 라자팍사를 아버지로 둔 고타바야는 20년간 복무한 군인 출신이다.

1992년 중령으로 제대한 그는 1998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05년 형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스리랑카로 귀국했다. 이후 그는 형과 함께 2005~2015년 철권정치를 주도했다. 고타바야는 대통령이 겸임하는 국방부 장관 아래의 국방부 차관을 맡아 강력한 군부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2009년 수십년간 진행된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족 반군 간 내전을 종식하는 데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마힌다와 고타바야가 정권을 장악하는 사이 마힌다의 가족들도 요직을 싹쓸이했다. 마힌다의 형 차말은 국회의장을, 동생 바실은 경제부 장관을 맡았다. 마힌다의 아들인 나말은 국회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했고, 그 외 다른 이들도 여러 직위에 포진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라자팍사 가문은 2015년 1월 예상치 못한 마힌다의 3선 실패로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게 됐다. 당시 마힌다는 임기가 2년 정도 남았음에도 조기 대선을 결정했다. 타밀족 반군과의 내전을 승리로 끝낸 여세를 선거로 이어 대선에서 다시 한 번 승리하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정작 선거에서는 집권당 사무총장에서 범야권 대선 후보로 변신한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전 보건부 장관의 깜짝 돌풍에 밀려났다. 가문의 간판인 마힌다가 대통령에서 물러나면서 라자팍사가(家)의 위상은 대폭 줄어들기에 이르렀다. 이후 마힌다는 지난해 말 시리세나 대통령과 손을 잡고 총리로 복귀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정치적 혼란만 유발했다.

지난 4월 스리랑카에 발생한 부활절 테러로 한 가톨릭교회 내부가 부서진 모습. UPI=연합뉴스

그러던 라자팍사 가문은 지난 4월 ‘부활절 테러’를 계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활절인 4월 21일 콜롬보 시내 성당과 호텔 등 전국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폭탄이 터져 26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현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용의자로 지목했고, 다수 불교계 싱할라족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여론이 강해졌다.

이에 고타바야는 지난 8월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고, 이번 선거에서 무난하게 승리를 거뒀다. 고타바야의 승리를 계기로 다른 라자팍사 가문의 일원들도 과거 영화로의 복귀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외신에 따르면 마힌다는 내년 초 차기 총리에 도전할 계획이며, 차말은 국회의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실은 라자팍사 가문이 이끄는 스리랑카인민전선(SLPP)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라자팍사 가문 출신은 7명이나 된다. 마힌다·고타바야 형제들과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 정치권에서 굵직한 자리를 맡으며 권위주의 정부의 기틀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다만 라자팍사 가문의 부활은 스리랑카 소수 집단에 대한 탄압과 인권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을 다시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고타바야는 내전 종식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의혹 등 여러 인권 탄압 관련 사안에 연루돼 비난받아왔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이나 반군 용의자를 납치해 고문하는 조직을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에 이슬람 사회와 소수 타밀족 등에서는 고타바야가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에 대한 불법 탄압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슬림인 린잔 모힌딘은 이번 선거 직전 가디언에 “고타바야가 승리하면 무슬림 사회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게 된다”며 걱정을 표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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