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을 완전히 가지고 놀더라”

국민일보

[이슈&탐사]“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을 완전히 가지고 놀더라”

[부동산 가격 상승 추적기] ② 대전→울산→부산, 외지인이 휘젓는 지방 부동산

입력 2019-11-18 04:00
가격 올라도 사들일 실수요자 충분
‘지역의 강남’ 불리는 곳 집중 공략
외지인→지역 투자자→실수요자
매수 패턴에 동네 사람이 곤욕 치러


“투기꾼들은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을 완전히 가지고 놀더라.”

외지 투자자들의 매매 패턴을 지켜본 부동산업자들의 평가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지역 부동산업자들의 설명은 대체로 유사했다. 우선 외지인들이 찍은 동네가 비슷했다. 해당 지역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런 동네 중에서도 규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거나 저평가돼 있는 지역이 타깃이 됐다. 지방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다고 하지만 교육시키기 좋고, 교통이 편한 동네에는 늘 실수요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 집값도 오를 수 있다’는 내지인 심리까지 노린 전략이다. 문재인정부 부동산 규제 정책 핵심인 ‘핀셋 규제’(이상 과열현상을 보이는 특정 지역만을 타깃으로 한 규제)는 외지 투자자의 다음 과녁 선정 기준이 된 것이다.

울산 남구 옥동에는 문수로 대로변을 따라 거대한 학원가가 형성돼 있다. 1층을 빼곤 전부 학원으로만 들어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식이다. 이 학원가를 둘러싸고 있는 옥동은 울산의 대치동으로 불린다. 울산 주민들 사이에서 ‘옥동 입성’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일 정도다.

외지인들이 몰려들었던 아파트 단지는 이 학원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문수로2차 아이파크 단지다. 대부분 구축 아파트인 옥동 바로 옆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라 내지인의 수요가 높은 곳이다. 큰길 하나만 건너면 울산서여중 등 중고등학교가 모여 있어 학교 가기 좋은 아파트로도 꼽힌다. 울산 주민 A씨는 17일 “옥동이 학원의 중심지인데 그쪽에는 신축 아파트가 없다”며 “그러다보니 새로 옥동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그쪽에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그 아파트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대전 부동산 급등 지역인 서구 둔산동 입지도 비슷하다. ‘대장주’ 중 한 곳으로 지목된 목련아파트의 경우 걸어서 5분 거리에 서울 대치동에서도 유명한 학원들이 모여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교육열이 굉장하지 않냐. 대전 사람들은 맞벌이 부부가 많다보니 학원가가 밀집돼 있어 안전하게 학원 보낼 수 있는 (목련아파트) 쪽을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동네는 지역 내 전통적인 부촌인 경우가 많다.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로 외지인의 원정 투자 행렬이 밀려들고 있는 부산 해운대구는 부산 내 집값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대전 둔산동이나 울산 옥동 인근도 해당 지방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힌다.

외지인이 이런 지역을 찍고 움직이는 모습은 전국 곳곳에서 목격된다. 국민일보가 접촉한 지방의 부동산 중개업자들에게서는 이런 동네의 이름이 몇 차례 거론됐다. “대전에 왔던 손님이 대구 수성구로 가서 돈을 벌었다”거나 “울산에서 한두 건을 하고는 부산 해운대로 넘어갔다”는 식이다. 외지인이 움직인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좋은 학군, 부촌 등 특징이 비슷한 동네들이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일반적으로 외지인은 해당 지역을 잘 모르기도 하고, 상품으로 접근하는 차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랜드마크 아파트를 산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사람이 없고 고령화된 지역을 사지는 않는다. 지방 중에서도 성장할 것 같은 지역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실수요자다. 외지인들이 이런 지역의 아파트를 골라 사들이는 건 가격이 올라도 매물을 받아줄 사람들, 즉 실수요자가 충분하다는 계산에서다. ‘오를 만한 곳이 올랐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추격 매수가 쉽게 붙는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게다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서울·수도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가격 상승 여력도 충분하다고 본다. 울산의 감정평가사 B씨는 “매집하는 사람들은 비싸게 해 놔도 누군가는 소화를 한다고 보고 학군 좋고 안정적인 곳으로 몰린다”고 분석했다.

외풍과 내지인의 실수요가 섞이면 집값은 공고해진다. 대구 수성구의 경우 외지인 자금이 집값 띄우기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내지인 수요가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수성구 범어동에서는 84㎡ 규모의 아파트 입주권이 9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최근 집값 급등세인 부산 해운대에서는 내지인 사이에서 집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가 달아올라 호가 띄우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로 시중에 풀린 돈이 규제 장벽의 틈을 파고든 영향도 있다. 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지방으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대부분 지방이 규제지역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청약과 관련된 이런 부분 규제가 적고 대출이나 세금 부분도 허들이 낮다”며 “이런 부분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서울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오른 데다 규제도 강해 투자가 쉽지 않다”며 “이 자금이 지역으로 갈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고 진단했다.

규제의 빈틈과 실수요자를 노린 외지인들의 전략에 지역은 속수무책인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보통은 ‘내 동네’의 부동산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외지 투기꾼들이) 학군 선호지역 등에서 ‘이 동네는 죽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개연성을 갖고 붙는다”며 “(그 결과) 먼저 외지인이 사고, 두 번째는 그 지역 투자자들이 산 다음 마지막에는 동네 실수요자가 들어온다”고 했다. 결국 동네 사람이 투기 후유증을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심하게 급등하고 투기바람이 일었던 곳은 회복이 힘들다”고 말했다.

광풍이 지나쳐 간 지역 현장에서는 이들이 규제를 ‘가지고 논다’는 표현마저 나왔다.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원래 수요가 있고 공급이 부족했던 동네에 외지인이 기대심리를 가져오면서 정상가격의 마지노선을 넘겨 버렸다”며 “부동산 대책을 내놔도 외지인은 안하무인이었다”고 말했다.

김판 임주언 정현수 김유나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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