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망해” vs “뭐든 괜찮아” 정시확대, 강북·목동 고1에게 물었다

국민일보

“우린 망해” vs “뭐든 괜찮아” 정시확대, 강북·목동 고1에게 물었다

서울 강북, 목동, 지방 일반고 학생 19명 인터뷰

입력 2019-11-20 00:20 수정 2019-11-20 00:20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2020대입 정시지원전략 설명회에 참석해 정시 배치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정시 확대’를 언급한 뒤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정시 전형의 비율을 확대하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달말 교육부의 발표가 이뤄지면 서울의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현행 20% 수준인 정시 전형 비율은 40%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첫 대상자는 2022년 대입 전형을 거치게 될 현 고교 1학년생들이다. 그간 정시 확대가 기정사실화된 뒤 대학과 일선 고교 교사, 학부모, 각종 교육단체에서는 찬반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그렇다면 실제 2022년 대입을 위해 수능을 치르게 될 고1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고교 1학년들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국민일보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전국의 고교 1년생 19명과 직접 인터뷰해 정시 확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학교와 지역 등에 따라 전형별 유불리는 확연히 갈린다. 이 점을 고려해 인터뷰 대상은 목동 학원가로 유명한 서울 양천구의 일반고 A고교 5명, 서울 강북의 일반고 B고교 5명, 비수도권 일반고 9명(대구 C고교, 경남 D고교, 제주 E고교)으로 구성했다.

세 부류 학생들의 반응은 흥미롭게도 정확하게 양분됐다. 지방과 강북의 학생들은 입을 모아 “정시 확대 반대”를 외친 반면, 목동 학생들은 “정시 확대에 찬성하지만 솔직히 뭐든 상관 없다”고 답했다. 어느 쪽이든 대응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다만 정시와 수시 중 무엇이 더 공정하냐는 질문에는 지역에 관계없이 쉽사리 답변하지 못했다.

다음은 목동, 강북, 비수도권 지역 학생들의 인터뷰 내용을 묶어 재구성한 것이다.

수능 가채점 표를 보는 고등학생. 연합뉴스

“정시 확대, 찬성하니?”

강북 : 나는 반대해. 일반고에 온 이유가 높은 내신 성적으로 수시, 그중에서도 학생부종합 전형을 노리기 위해서였거든. 솔직히 강북에서 좋은 대학 가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 수능 시험 잘 보면 되지 않냐고? 강남, 목동 애들은 어릴 때 유학 다녀와서 영어 잘하지, 또 국어 수학은 사교육을 얼마나 많이 받는데. 강북에서 우리가 수능으로 걔네들을 이기기는 힘들지. 국영수 성적은 학원비에 정비례한다는 말도 있잖아. 좋은 학원들 다 강남쪽에 몰려 있는 거 알지? 우리 형만 해도 정시 준비한다고 대치동으로 학원 다녔었는데 왕복 두 시간 걸리더라.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얼마야. 몸은 또 얼마나 힘들고.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경쟁하는데 정시가 공정하다고? 가당치 않은 말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정시 위주로 바뀔 줄 알았다면 일반고를 선택 안 했을 거야. 내신 경쟁이 힘들더라도 수능 준비도 ‘빡세게’ 시키는 자사고(자율형사립고)에 지원했겠지. 작년만 해도 수시가 계속 확대되는 분위기였잖아. 근데 조국 사태 하나 터졌다고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어. 막말로 입시가 ‘운빨’인가 싶어 씁쓸해.

비수도권 : 나도 반대야. 난다 긴다하는 학원 선생님들 다 서울에 있는데 지방에서 EBS 무료 강의 같은 거 듣고 수능 경쟁이 될 거라고 생각해? 다만 우리의 비교 대상은 강남만이 아니라 지방보다 교육 인프라가 월등한 수도권 전체야. 분당이나 일산 같은데도 있잖아. 성적만으로 대입이 결정되는 정시보다 봉사, 동아리 같은 비교과 활동이 스펙으로 인정받는 수시가 우리한테는 훨신 유리해. “이러다 우리 다 ‘지잡대’ 가겠다” 우리끼리 이런 말도 해. 우리도 지방에 살지만 대학은 다들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하거든.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 얘기만이 아니야. 주위에 내신 1점대에 모의고사 1등급 받는 친구들도 수도권 애들이랑 정시로 경쟁하는데는 한계를 느껴. 물론 지방에도 과고·외고가 있고, 소위 말하는 서울대 잘 보내는 명문고들도 있어. 그런 학교들, 그러니까 면학 분위기 좋고 지원도 ‘빵빵한’ 학교들에 비하면 우리 같은 지방 일반고들은 내신 성적 받기가 비교적 쉽다는 거 말고 큰 이점이 없어. 좋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게 아냐. 단지 앞으로는 어느 고등학교에 진학했느냐에 따라서 갈 수 있는 대학도 정해지는 걸까, 그런 걱정이 생겨.

목동 : 난 정시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이야. 목동 지역은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공부하는 탓에 내신 점수 잘 받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거든. 물론 강북 일반고 친구들이나 지방 일반고 친구들도 모두 열심히 내신 준비를 하겠지만, 여기는 정말 차원이 달라. 말 그대로 경쟁이 살벌해. 지난 학기에는 특정 과목에 100점이 너무 많아서 1등급이 아예 없었던 과목도 있었어. 보통 전교 1등이라면 내신이 1.1 이럴 거 같잖아. 근데 여기서는 전교 1등을 해도 내신이 1.5~1.6 사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과목별로 점수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1점 차이에 등급이 주르륵 미끄러지는 일이 정말 많아. 얼마나 치열한지 상상도 못할 거야. 게다가 수시 전형은 3년 내내 모든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성적을 다 잘 받아야 하잖아. 근데 정시는 수능 한번 못 쳤더라도 2번이고 3번이고 기회가 계속 있잖아. 물론 나도 재수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시는 기회가 여러 번 있다는 생각에 심적 부담은 덜해.

연합뉴스

“그래서 학원은 더 다닐 거야?”

강북 : 수능 기회가 여러 번이라고? 기회가 여러 번 있다는 건 목동이나 강남 만의 이야기인 것 같아. 재수하는 1년 동안 평균 학원비가 2000만원이라던데. 그게 적은 돈은 아니잖아. 정시가 확대된다는 소식을 듣고 수학 학원 알아보는 중인데 그것조차 부담스러우신지 엄마가 한숨을 내쉬더라. 수시는 나랑 똑같이 학교 수업을 듣는 친구들끼리 경쟁이니까 딱히 학원갈 필요를 못 느꼈거든. 수능을 목표로 준비하려면 전국의 학생들이 다 경쟁 상대가 되는 거잖아. 많이 불안하더라. 엄마가 학원 보내주겠다고는 하셨는데. 솔직히 미안해. 당장 단과 학원도 부담스러운데 2000만원짜리 재수학원은 남 이야기지.

비수도권 : 정시 확대 이야기에 학원 더 다닐 생각부터 했다니 역시 서울은 다르네. 수도권과 지방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사교육 시장의 규모인 것 같아. 지방 학생들이 메가스터디 같은 인기 학원에 다닐 기회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인강으로만 듣는 강의를 서울에서는 실강으로 들잖아. 친구들 중에는 방학 동안 유명 학원으로 유학을 가기도 해. 그것도 여유가 있는 집 애들 얘기지만. 그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친구들은 정시 확대 소식에 ‘모의고사 3개년치 한번 더 풀고, EBS 강의 한 번 더 들어야지’ 이렇게만 생각하더라고. 물론 우리야 정시가 50% 이상 확대된 입시를 치르지는 않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지방 학생들이 ‘인서울’ 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거야.

목동 : 정시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우리 역시 정시 비율이 늘어나면 힘든 건 마찬가지야. 만약에 정시가 확대된다고 해도 수시가 여전히 절반을 차지하잖아. 그럼 둘 다 똑같이 열심히 준비해야 할 텐데. 지금처럼 빡빡한 내신 준비에 수행평가랑 교내 활동도 해야 하고, 거기다 정시까지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혀. 1학년 때는 수시를 바라보고 교내 활동에 경시대회 준비 하느라 사실 학원은 영어, 수학 두 군데만 다니고 있었거든. 근데 들어보니까 수능에서 당락을 가르는 건 국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국어 학원도 알아보는 중이야.

수능 고사실 풍경. 연합뉴스

“정시 늘린다니까 학교 분위기는 어때?”

목동 : 사실 대학 가는 게 어려워질까봐 걱정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어. 여기 애들은 정시든, 수시든 어차피 둘 다 준비하고 있으니까. 뭐든 상관 없어, 이런 분위기랄까. 애초에 한 가지 전형만 준비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거든. 내 경우에는 친구들과 함께 교내 과학 탐구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는데, 거기서 과학 공부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어. 정시와 수시를 동시에 준비하는 셈이지. 그렇긴 하지만 정시가 확대되면 우리처럼 내신이 불리한 지역에서는 정시 전형으로 좋은 대학에 갈 기회가 많아진다고 느껴지니까 친구들이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이긴 하지.

강북 : 정시 확대가 발표되고 담임 선생님이 “우리 다 망했다”고 하셨어.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도 다 “큰일이다”라고 하셔. 우리 학교는 한 반에 30명씩 11개 반이 있는데, 이 중에 수능 중심으로 공부해온 애가 딱 한 명이야. 나머지는 다 내신 중심이었던 거지. 우리는 이미 1년 동안 내신 공부에 집중해왔는데, 처음부터 수능 공부 중심으로 해온 강남이나 자사고 애들이랑 어떻게 경쟁하겠어. 벌써 1년이나 지났는데, 1년을 손해 본 거잖아. 누가 우스갯소리로 이럴 바에 그냥 자퇴하고 하루종일 국영수 학원 다니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

비수도권 : 수시는 정시에 비해 지방 학생들이 틈새시장을 노려볼 기회가 많아. 대표적으로 서울대 지역인재전형이 있잖아. 농어촌특별전형도 정시보다 선발 인원이 많아. 거기다 내신성적 관리가 용이한 학교에 다닌다면 당연히 수시를 준비하는 아이들 비중이 압도적이겠지? 개중에는 모의고사를 쳐다도 안 본 친구도 있어. 목표 대학의 전형에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없거든. 그러면 뭐하러 수능 공부를 하겠어.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를 채우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수시 덕분에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했는데 그런 기회가 없어지는 것도 안타까워. 기계공학부에 가고 싶은 친구는 페트병을 이용한 전구를 만들어서 교내과학 경진대회에서 수상했어. 방송계를 꿈꾸는 친구는 학교 신문을 만들고. 정시가 확대돼 입시에서 성적으로 줄을 세우면 이런 활동을 누가 하겠어? 왜? 아닐 거 같아? 수능으로 대학 가야 하는데 애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학교가 그런 제도를 유지하겠어? 친구 한명은 “학교가 감옥 같아지겠다”고 하더라. 아마 진심일 걸.

강북 : 우리도 그래. 우리 학교도 진로 탐색 활동이랑 발표동아리 같은 재밌는 프로그램 많이 했거든. 그거 다 없어지고 하루종일 국영수만 한다고 생각하니까 벌써 답답하다. 이런 활동이 없으면 대학에 어떤 과가 있는지, 뭘 배우고 어떻게 공부하는지 전혀 모를 거 아니겠어? 아무 것도 모르고 점수 맞춰서 대학에 가면 대학 생활 4년도 재미없을 것 같아. 대학에서도 안 좋아할 것 같고.

연합뉴스

“정시와 수시, 뭐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해?”

목동 : 내 입장에서는 정시가 확대되는 게 심적 부담도 덜하고 유리하긴 해. 하지만 공정성 측면에서는 뭐가 더 공정한지 모르겠다. 결과의 측면에서 보면 정시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사실 결과가 공정하다고 과정까지 모두 공정한 건 아니잖아.

강북 : 맞아. 너무 어려운 문제야.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공정성을 떠나서 우린 당장 공부를 해야 하는데 정책이 이렇게 갈팡질팡하니까 어디에 맞춰서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어. 3년 중 벌써 1년을 날렸어. 남은 2년 동안 또 뭐가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비수도권 : 공정성이 입시제도가 순수하게 학업능력만을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말 많은 수시보다 정시가 더 공정하겠지.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수시를 확대해온 건 지역균형을 위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해. 공정성이 지역으로 인해 기울어진 출발선을 조정해준다는 의미라면 수시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어. 애초에 수시, 정시를 떠나 일관된 교육정책이 없는데 어떻게 공정성을 논할까? 그거 알아? 우리 말이야, 그러니까 2022년 대입을 대비하는 고1들은 항상 입시제도 변경에 있어서 첫 타자였어. 중학교 1학년 때는 자유학기제가 처음 도입돼서 학교 시험도 한 번 안 치렀지. 그러더니 우리 수능을 ‘문·이과 통합’이라는 취지로 ‘공통과목+선택과목’ 형식으로 변경하더라. 이제 정시·수시 비율까지 조정한다니 그동안 내가 공부한 것과 모아온 입시 정보는 헛수고가 됐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실험용 표본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해. 앞으로는 학생들을 우선시하는 마음으로 교육제도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야.

소설희 인턴기자
박실 인턴기자
이홍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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