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락 두절시 벌금 5000만원+α” 카나비 ‘불공정 계약서’ 입수

국민일보

[단독]“연락 두절시 벌금 5000만원+α” 카나비 ‘불공정 계약서’ 입수

e스포츠 게임단 계약서 공개는 처음…하태경 “정부, 전수조사 나서야”

입력 2019-11-21 00:15 수정 2019-11-21 00:15
‘중국으로의 강압 이적 의혹’ 사건 피해자로 알려진 ‘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게이머 ‘카나비’(게임상 닉네임) 서진혁(19)군이 소속 팀 그리핀과 불공정 조항이 다수 포함된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LoL 프로게이머 '카나비' 서진혁. 그리핀 제공

계약서에는 선수가 30일 이상 입원할 경우 팀은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 건강 문제를 들어 팀이 선수를 내칠 수 있는 것이다. 선수의 기량이 떨어질 경우 팀은 즉시 계약 해지도 가능하다. 기량 저하 기준은 ‘팀의 판단’이다. 연락이 두절되면 팀은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한 뒤 ‘5000만원+그간 지급한 모든 돈’을 청구할 수 있다. 선수에 대한 상표권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선수에게 이전되지만 개발 비용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

앞서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 등은 장기 계약을 원치 않는 미성년자 서군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중국 LoL 팀 징동게이밍(JDG)과 4년 이상의 계약을 맺으려 시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양 팀은 지난달 ‘초특급’ 유망주인 서군의 이적료를 500만 위안(8억3000만원 상당)에 합의했다. 거액의 이적료를 받기 위해 미성년자 선수를 협박해 강제로 이적시키려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e스포츠 업계에서 논란이 된 이른바 ‘카나비 사태’다. 이는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이 서군과의 개인 대화 내용을 지난달 16일 아프리카TV 방송 등에서 폭로해 알려졌다. 선수 생명이 짧은 e스포츠 업계 특성상 선수들은 장기 계약을 기피한다. LoL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는 3년이 넘는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그리핀의 모기업 스틸에잇은 20일 입장문을 내고 “서군의 JDG 이적 동의는 본인의 자발적 의지에 의한 결과로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카나비' 서진혁 군과 게임 팀 '그리핀' 간의 계약서 캡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그리핀-카나비 계약서 들여다보니

국민일보는 이날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로부터 지난 2월 서군과 LoL 프로 팀 그리핀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를 입수해 양자의 계약 조항을 분석했다. e스포츠 업계에서 특정 선수의 계약서가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분석 결과, 카나비 사태의 배경에는 불공정 계약 문제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약서에는 팀이 선수의 사생활까지 개입할 수 있게 돼 있다. 사실상 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내보낼 수 있는 규정도 있었다. 선수가 팀 결정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계약서상 가장 큰 문제로 꼽힌 조항은 계약 해지 부분이다. 16조 7항에는 “선수활동 등과 무관한 사유로 병원 등에 연속으로 30일 이상 입원해 정상적인 선수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있다. 8항은 “중대한 질병 또는 상해를 당하여 선수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상적인 선수활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선수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태’가 무엇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다.

'카나비' 서진혁 군과 게임 팀 '그리핀' 간의 계약서 캡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7항과 8항의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선수는 1년 간 다른 팀과 유사한 계약을 하지 못한다”는 9항도 문제다. 이는 ‘꾀병’을 의식한 조항으로 보이지만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프로스포츠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팀은 선수에 대한 보호 의무가 있다”며 “중대한 질병, 상해를 당하는 경우 치료비 부담 등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채율의 정다은 변호사는 “1년 간 유사한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지나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16조 5항에는 선수로서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팀이 판단하는 경우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팀 마음대로 선수를 평가해 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너무 주관적이어서 정당한 해지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카나비' 서진혁 군과 게임 팀 '그리핀' 간의 계약서 캡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3항은 팀과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다. 이때 팀은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5000만원의 위약벌과 함께, 손해배상액을 선수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손해배상액은 팀이 선수에게 지급한 모든 금액이라고 명시했다. 서군의 계약서상 연봉은 2040만원이다. 연봉의 2.5배에 해당하는 금액과 지금까지 받은 돈을 합쳐 전부 내놓으라는 것이다. 정다은 변호사는 “연봉에 비해 위약금 액수가 지나치다”며 “‘연락 두절’도 어느 정도가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수익 분배 문제도 심각하다. 그리핀과 서군의 계약서에는 지식재산권으로 발생한 수익을 분배하는 조항이 없다. 또 지식재산권 부분을 규정해 놓은 계약서 6조 2항에는 “계약기간이 종료된 이후 상표권의 모든 권리를 선수에게 이전하지만 동시에 선수는 상표권 개발에 투자한 비용 전부를 팀에 지불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선수가 상표권을 가져갈지 말지 팀과 협의할 수 있지만 어찌됐든 개발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퍼블리시티권과 콘텐츠 저작권 생산에 팀이 기여했을 경우 팀은 이를 계속 사용하거나 보유할 수 있다.

업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구단이 선수와 관련된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사전에 합의된 비율에 따라 적절히 배분돼야 한다”며 “수익배분 조항은 없고 전부 구단에 귀속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은 계약 기간 동안 선수 관련 지적재산권을 통한 수입을 전부 가져감으로서 개발 비용을 회수한 것 아니냐”며 “선수가 개발비용을 왜 지불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카나비' 서진혁 군과 게임 팀 '그리핀' 간의 계약서 캡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그리핀 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배포한 ‘대중문화예술인(연기자 중심) 표준전속계약서’를 대부분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표준계약서상 선수에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대신 팀에 유리한 부분을 추가했다. 표준계약서의 5조 4항에는 “연기자는 회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으나 그리핀 계약서에는 빠져있다. 표준계약서 상에는 계약 종료 이후 지식재산권 수익을 분배하거나, 일부를 계약서상 ‘을’에게 조건 없이 이전하게 돼 있지만 이 부분도 그리핀 계약서에는 없다. 정다은 변호사는 “그리핀 계약서에는 선수가 개발 비용 전부를 팀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나와 있으니 표준계약서를 개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그리핀 측은 “지금 드릴 말씀은 없다”고 해명을 거부했다.

팀과의 불공정 계약, 서군뿐인가

불공정 계약은 서군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리핀은 이와 유사한 구조의 계약서로 소속 선수들 대부분과 계약했을 가능성이 있다. 불공정 계약이 업계에 만연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계약 때 계약 내용을 제대로 말해 주지 않거나 계약 기간을 멋대로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약만 하면 ‘땡’이라는 식도 있다”며 “미성년자 등 어린 선수들의 심신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건강을 해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는 “‘임금을 못주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일도 있다”며 “소송으로 갈지 조금이라도 받고 나갈지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를 선택하고 그냥 나오게 된다”고 전했다.

한편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운영위원회는 이날 카나비 사태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와 관련 폭로를 한 김대호 전 그리핀 감독에 대해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두 사람은 앞으로 LCK를 포함, 라이엇게임즈가 주관하는 e스포츠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징계 발효 시기는 2019년 11월 21일부터다. 그리핀은 벌금 1억원의 징계를 받았다.

운영위는 “구단의 규정 준수를 독려하고 선수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조 전 대표가 미성년자인 서군 단독으로 이적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고, 미성년 선수가 특정한 선택을 하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팀 책임자는 미성년자인 선수의 신분에 변동이 생기는 경우, 해당 미성년 선수와 선수의 법정대리인(부모님)에게 충분히 정보를 안내하고 동의를 득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군의 부모님에게 JDG이적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나비 사태' 일지

또 운영위는 일종의 내부 고발자라고 할 수 있는 김 전 감독에게도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내린 까닭에 대해 “조사 과정에서 김 전 감독이 그리핀에 재직할 당시 일부 선수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는 제보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기간 지속적으로 피해 선수들에게 행해진 (김 전 감독의) 폭력적 언행의 수위는 인격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임을 복수의 진술 및 제출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며 “무엇보다 폭언과 폭력의 대상이 됐던 일부 선수들은 당시 미성년자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운영위는 지난달 17일부터 해당 사건 조사에 착수했으며, 29일 결과에 대한 중간 발표를 했다.

운영위는 후속 조치도 진행하기로 했다. 국민일보가 제기한 에이전시 계약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 밝혀진 선수 에이전트 계약 건과 관련해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있는지 리그 전반에 걸쳐 조사를 진행하겠다”며 “이를 포함해 팀과 선수가 체결한 계약 전반에 걸쳐 불공정한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임대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한편 미성년 선수에 대한 보호도 강화하기로 했다. LCK 리그 규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계약 전반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점도 밝혔다. 특히 “선수와 팀 간 계약에 있어 운영위원회 승인 후 계약 내용의 변경이 발생하면 반드시 이를 운영위에 고지하도록 의무화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라이엇게임즈가 그간 LCK 참여 팀을 관리해왔기 때문에 최근 벌어진 사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17일 오전 대구 육군 제2작전사령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 하고 있다. 뉴시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e스포츠 업계의 기형적 수익구조와 불공정 사기·노예계약 과정을 확인했다”며 “검찰은 사기·협박에 의한 미성년자 불공정 계약 사건을 즉각 수사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전수조사하고 시정 명령을 해야 한다”며 “LCK 운영위와 한국e스포츠협회는 조 전 대표 등 사건 관계자들이 다시는 e스포츠업계에 발붙일 수 없도록 강력히 징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동성 이다니엘 윤민섭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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