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무기력하면서 반항적인 아이

국민일보

[이호분의 아이들세상] 무기력하면서 반항적인 아이

부모의 걱정 때문에 지나친 개입이 무기력과 반항을 불러

입력 2019-11-27 14:27

가족들이 대화나 말을 통해 가족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엔 그들이 함께 하는 활동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통찰을 얻기도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인 L은 반항이 심하다. 매우 순하고 순종적이던 아이가 갑자기 달라졌다. 매사에 의욕이 없이 무기력하게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낸다.

L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만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하며,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도 어머니가 매우 지시적이고 통제적인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아이가 이전과 달라진 것에만 초점을 두고 화가 나 있을 뿐 자신의 문제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L이 너무 실수가 많고 의욕이 없으니 그냥 지켜보기 힘들며, 아마도 엄마의 개입이 없었다면 학교 생활 자체가 어려웠을 거라고 하였다.

학교 준비물도 빠뜨리고 가는 적도 많고 숙제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일기를 쓸 때도 혼자 쓰도록 하면 너무 형편없이 써놓기 때문에 간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섭하는 엄마와 L은 자주 다투었고 심각하게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였다. 아빠는 그동안 회사 일이 너무 바빠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였고 육아에 도움을 못주다 보니 아내에게만 맡겨 놓았는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다 보니 후회가 된다고 하였다.

먼저 가족에게 ‘가족 그림 그리기’과제를 주었다. 가족이 뭔가 한기지 주제를 정해서 그림을 완성하고 필자는 관찰을 하는 거다. 먼저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아빠는 뒷전으로 물러나 소극적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L도 묵묵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나서서 주제를 ‘가족 놀이공원에서 즐거웠던 날’로 정하자고 하였다. L은 뭔가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으나 말없이 따르는 듯 했다. 아빠도 수동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작업을 할 때도 엄마가 나서서 두 사람에게 역할을 분담해 주었다. L은 마지못해 따르는 듯 했다. 아빠는 정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갔다.

엄마는 L이 무엇인가를 그릴 때 마다 ‘그렇게 하면 안 돼지, 이렇게 그려봐. 그 놀이기구는 거기보다는 여기다 그리는 게 좋지 않니?’라는 식으로 간섭을 해나갔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였지만 내용은 지시하는 것이었다. 과제를 마치고 녹화해 놓은 것을 보면서 각자 느낀 점을 말해 보게 하였다. 처음엔 침묵이 흘렀다. L에게 지지하며 말해 보게 하자 “이건 엄마의 작품이지 우리 가족이 작품이 아니예요. 그래서 하기가 싫었어요. 하지만 거부하면 시끄러워 질 거 같아서 억지로 한 거예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엄마는 “무슨 말이니? 엄마가 나서기라도 했으니 완성을 했지 안 그랬으면 여기서 밤새 주제도 못정하고 말 걸요?” 라고 하였다.

다음 과제는 L이 주도해서 가족의 작품을 한번 완성해 보도록 하였다. 엄마나 아빠는 L이 도움을 요청 할 때만 협력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과제를 주고 각자 드는 생각을 글로 적게 하였다. 엄마가 가장 힘들어 했다. ‘도대체 이 녀석이 주제를 제대로 정할 수 있기나 할까? 잘 못하면 어떻게 하지? 결국은 내가 도와주어야지 완성이 될 텐데..... ’하는 말을 적었다. 하지만 L은 빨리 하지는 못했지만 차츰 주제를 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조화시키면서 작품을 꽤 훌륭하게 완성했다. 느낌을 묻자 L은 “엄마 놔둬도 전 잘 할 수 있어요”라며 뿌듯해 하는 듯 했다. 엄마도 작품을 시작하기 전의 예측이 전혀 맞아떨어지지 못했음을 확인하였다. 엄마는 “제가 불필요한 걱정을 내려놓고, 아들을 믿고 지켜보니 스스로도 잘 해내는군요. 무엇보다 L이 이렇게 의욕적으로 뭔가를 하는 모습을 그동안 못 보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뿌듯해 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요” 엄마의 부정적 예측이 엄마를 불안하게 하였고 지나친 개입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L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하였음을 활동을 통해 가족이 깨달았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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