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된장국에 언 몸 녹이시길” 어느 마을의 밑반찬 선행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된장국에 언 몸 녹이시길” 어느 마을의 밑반찬 선행

입력 2019-12-07 09:00
독거노인에게 밑반찬을 나눠주고 기념촬영을 하는 청천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및 청천면적십자봉사회 회원들. 충북 괴산군 청천면사무소 제공

이웃의 정이 메말라간다고 하지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닌 시대가 됐습니다.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마을이 다 메마른 건 아닌 모양입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지난 7월 시작된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사랑 찬(饌) 밑반찬 지원 사업’에는 지역 주민들의 정이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 20명을 대상으로 매달 2차례 밑반찬을 나눠주는 사업입니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밑반찬 사업에 정기적으로 달걀 10판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쌀 40kg을 흔쾌히 내주는 분도, 4가구 분량의 반찬을 지원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또 된장을 판매하는 익명의 주민은 지난 9월부터 정기적으로 15개씩 포장 된장을 협의체에 나눠주고 있습니다.

된장 기부자가 밝힌 선행의 이유는 참 소박했습니다. 그는 6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을 이장님의 소개로 해당 사업에 대해 알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도 십시일반 도움을 주고 있는데 나는 뭘 할까, 하다가 된장을 파니까 된장을 드리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추운 겨울날 노인분들이 따뜻한 된장국을 먹고 몸이라도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작은 마음들이 전달된 걸까요. 봉사자들이 자택을 방문하면 어르신들은 너무 고마워한다고 합니다. 반찬을 맡은 98세의 할아버지는 “고맙다”는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찾아오기도 했답니다.

밑반찬을 만들고 있는 청천면적십자봉사회 회원들. 충북 괴산군 청천면사무소 제공

청천면적십자봉사회 소속의 한 회원이 한 할머니에게 직접 밑반찬을 드리고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사무소 제공

사업은 청천면사무소 맞춤형 복지팀의 아이디어로 시작됐습니다. 사업을 담당하는 맞춤형 복지팀 소속 이상미 팀장은 국민일보에 “복지 욕구를 조사해보니 홀로 끼니를 때우시는 독거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밑반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힘을 보탠 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청천면 적십자봉사회였습니다. 이들이 밑반찬을 만들어 직접 독거노인의 집에 갖다 주는 방식으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밑반찬을 드리는 과정에서 소소한 대화도 나누게 된다고 합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대화의 기회가 많지 않아 봉사자들과 만나 얘기 나누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고 하네요. 행복해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모습에 봉사자들 마음까지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은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안부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맞춤형 복지팀 소속 직원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해당 부서의 직원들은 매달 지역 농가에서 일손을 돕는 대가로 소액을 받는데, 지금까지 모은 돈을 밑반찬 사업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김장철을 대비해 배추를 뽑는 등 주민들 농사일을 직접 도우면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독거 노인들에게 양질의 밑반찬을 드릴 수 있도록 사업 밑천에 보탰다”는 게 이상미 팀장의 설명입니다.
청천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소속 직원이 한 할아버지의 자택을 방문해 밑반찬을 주고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사무소 제공

최근에는 경사도 있었습니다. 올해 괴산사랑 평가회에서 청천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단체 부분 2위 우수상을 받아 사업비 300만원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이 사업비는 내년도 밑반찬 사업에 활용하는 한편 차상위 계층이 우체국 보험인 ‘만원의 행복’을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비를 지원하는 데도 쓰일 예정입니다.

아직도 이웃의 벽이 너무 높다고 여겨지시나요. 너무 비관만 하지는 마세요. 꼭 닫힌 대문 안에 이웃을 돕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청천면 주민들처럼,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문을 열고 나와 도와줄 이웃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건 문을 두드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영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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