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삶이 애달파도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삶이 애달파도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어느 판사가 동반자살 미수 피고인 2명에게 쓴 편지

입력 2019-12-08 15:01 수정 2019-12-08 15:02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설령 그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절대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법정에 선 청년 둘은 재판장의 이같은 말에 눈물을 쏟았습니다. 지난 7일 울산지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청년들은 한때 서로의 극단적 선택을 도우려 했습니다. 법은 그것을 ‘자살방조미수 혐의’라고 규정했습니다. 죗값을 치르러 법의 심판대에 오른 두 사람, 재판부는 이들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A씨(29)는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정신적 버팀목은 어머니였지요. 그런 어머니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A씨의 외로움은 더욱 짙어졌다고 합니다.

원만하지 못했던 직장생활과 대인관계마저 A씨를 괴롭게 했습니다. 그는 결국 목숨을 끊기로 작정하고 함께 할 사람을 SNS에서 찾았습니다. 자신처럼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사람들을 모집한 겁니다. 그렇게 B씨(35), C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세 사람은 8월 10일 울산에 모여 극단적 선택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했습니다. A씨는 비용 마련을 위해 휴대전화까지 팔았습니다. 이튿날 여관방에 모인 세 사람.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A씨와 B씨는 실패했습니다. C씨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구조됐고요. 이후 A씨와 B씨는 서로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고, 특히 사람을 모으고 도구를 준비한 A씨는 주범으로 지목돼 구속됐습니다.

이들의 재판은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저를 부모로 여겼던 여동생에게 미안해서라도 용기를 내서 살겠다’는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A씨 여동생도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행복해서 오빠를 돌보지 못했다. 이제 오빠를 지켜주고 싶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습니다.

A씨와 구치소 생활을 함께한 재소자도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재소자는 ‘A씨의 가정사와 범행 경위를 듣고 마음이 쓰였다. 이제 A씨는 많은 격려와 조언을 듣고 삶의 의지가 매우 강해졌다. 재판장께서 A씨에게 따뜻한 말과 희망을 전해주고 선처해 달라. 범죄자지만 염치없이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범행은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위험이 큰 범죄라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보통 재판은 이쯤 마무리되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박 부장판사가 준비해 온 책과 편지 때문입니다. 그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책을 A씨와 B씨에게 선물했고, 편지 내용을 두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법정에서 읽었습니다. 여동생 집까지 갈 차비가 부족했던 A씨에게는 20만원을 챙겨줬다고 합니다. 박 부장판사가 고심하며 썼을 편지, 그 내용 중 일부를 전합니다.

“피고인들의 이제까지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전 형의 선고로 모두 끝났지만,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각자 써 내려가야 합니다. 그 남은 이야기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를 기원하며, 설령 앞으로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절대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게 됐고, 듣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람되게도 여러분의 이번 판단이 착각이고 오해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신컨대 지금보다 좋은 날이 분명히 올 것이고, 아직 오지 않은 날을 누릴 생각을 해주길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를 막을 수 있다면 강제로라도 구금해야 하는 것 아닌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는 긍정적 징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결정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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