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보호하는 닭 같아” 박항서에 쏟아진 베트남 언론 찬사

국민일보

“새끼 보호하는 닭 같아” 박항서에 쏟아진 베트남 언론 찬사

입력 2019-12-11 11:33
박항서 감독. 연합

박항서 감독(60)이 퇴장도 불사하는 열정으로 베트남의 감격스러운 우승을 이끌었다. 관중석으로 쫓겨났지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을 지도했다. 주변에 있던 상대 팬들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 대표팀은 10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리살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동남아시안(SEA)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2골을 책임진 도안반허우의 활약에 힘입어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3 대 0 완승을 거뒀다.

이날 간결한 역습이 장기인 베트남은 패스 축구에 능한 인도네시아를 만나 초반 고전했다. 인도네시아에 점유율을 빼앗겨 베트남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답답한 흐름이 전개됐다. 이에 박 감독은 상황을 뒤집기 위해 시종일관 벤치와 터치라인을 오가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선제골과 쐐기골을 넣은 도안반허우. 연합

선수들은 열정적인 지도에 투지로 답했다.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상대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덤볐다. 전반 25분 와일드카드로 뽑힌 인도네시아 성인 대표팀 출신 미드필더 에반 디마스가 몸싸움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교체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황한 인도네시아 선수들이 짧은 패스 대신 롱킥으로 일관했고 베트남의 역습이 살아났다. 결국 전반 39분 얻어낸 프리킥 상황에서 수비수 도안반허우가 헤딩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후반 들어서도 베트남 공세는 계속됐다. 후반 14분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대표팀 주장 도홍중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후반 28분에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키퍼가 쳐낸 공을 선제골의 주인공 도안반허우가 왼발로 건드려 쐐기골을 넣었다.


박항서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하는 순간. 심판이 레드카드를 꺼내들자 달려들었다. 스포티비 캡처

이날 박 감독은 2 대 0으로 리드한 후반 32분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베트남 미드필더 트롱호앙이 쓰러졌는데도 경기를 그대로 진행한 심판에게 거센 불만을 표했다.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 채 심판을 노려보던 박 감독은 심판이 레드카드를 꺼내 들자 달려들었다. 심판의 어깨를 툭툭 치며 판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어필했다. 도무지 물러나지 않는 박 감독 앞을 부심판이 막아섰고 베트남 코치진이 그를 다독였다.

이후 박 감독은 관중석으로 이동했다. 안전을 위해 보안요원들이 주위에 배치됐지만 일부 인도네시아 팬들은 손가락 욕 등 위협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나 박 감독의 열정은 멈출 줄을 몰랐다. 팔을 내뻗어 적극적으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결과는 베트남의 숙원이었던 SEA게임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였다.

베트남이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박 감독은 운동장으로 다시 내려왔다. 선수 한 명 한 명을 따뜻하게 안아줬고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도 받았다. 관중들을 쳐다보던 박 감독은 품에서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를 꺼내 들더니 경기장을 돌았다. 자신의 티셔츠 가슴 왼편에 새겨진 금성홍기를 손으로 치기도 했다. 이 장면을 생중계로 목격한 베트남 팬들은 “우리에게 박 감독은 이미 베트남 사람”이라며 감격했다.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꺼내들고 축하하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 유튜브 채널 360 THE THAO.

박 감독은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 퇴장 여파로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베트남 언론들과 만나 “불만을 표출한 것이 과했던 것 같아 죄송하다”면서도 “내가 레드카드를 받는 것보다 우승이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순간 매우 기쁘고 이 기쁨을 즐거워하는 모든 분과 나누고 싶다”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우리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준 베트남 국민에게 이번 우승을 바친다”는 소감을 전했다.

베트남 언론 ZING은 이날 승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박 감독을 두고 “마치 새끼를 보호하는 닭 같았다”고 표현했다. 다친 선수를 위해 항의하다 퇴장당한 박 감독의 투지를 칭찬한 것이다. ZING은 “박 감독은 선수들이 파울을 할 때마다 주심이나 상대 감독과 언쟁을 벌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며 “박 감독은 베트남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아빠라는 애칭으로 얻으며 베트남을 축구에 열광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박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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