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딸을 구해주신 분들께…” 아빠 하승진의 편지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딸을 구해주신 분들께…” 아빠 하승진의 편지

입력 2019-12-15 11:44 수정 2019-12-15 13:05
하승진씨의 딸 지해양. 하승진 인스타그램

“딸의 생명을 구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전 농구선수 하승진씨가 쓴 장문의 SNS 글이 감동을 안기고 있습니다.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겨울도 녹일 만한 따뜻함을 느꼈다며 박수를 보내고 있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씨의 글을 참고해 14일 그날의 기억을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이날 하씨와 가족들은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강원도 홍천으로 향하던 길이었죠. 오후 6시쯤 서울 양양고속도로 춘천 방향 가평휴게소를 500m 정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딸 지해양이 이상했습니다. 눈동자가 돌아간 채 팔다리가 경직됐고, 심지어 호흡까지 멈춰버린 겁니다. 몇 초간의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하씨는 휴게소에 도착해 급하게 주차를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딸을 끌어안고 사람이 많은 광장으로 달렸습니다. 하씨는 “딸을 안고 뛰는데 경직됐던 사지가 힘없이 축 늘어지며 의식을 잃은 걸 느꼈다”고 회상했습니다. 아빠의 마음은 타들어 갔습니다. 작은 딸의 입에 숨을 불어넣으면서도 아무 일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을 겁니다.

하승진씨와 딸 지해양. 하승진 인스타그램

이후 하씨는 지해양을 눕힌 채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 들어갔습니다. 그사이 아내 김화영씨는 119 구조대에 신고를 했습니다. 정신없는 엄마 아빠를 도운 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수십명쯤 되는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지해양의 손발과 온몸을 주무르고, 쌀쌀한 날씨에 체온이 떨어질까 입고 있는 옷들을 벗어 덮었습니다. 담요를 가져와 지해양을 감싸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잠시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해양의 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오기 시작한 겁니다. 다행히 119구조대도 도착해 지해양은 춘천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고열성 경련이었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고, 치료 후 정상으로 돌아온 지해양과 가족들은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지해양은 현재 상태가 안정돼 밥도 잘 먹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다네요.

하씨는 “패닉에 빠져있던 저희 가족을 수많은 시민분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그래서 대응이 몇 초만 더 늦어졌더라면 아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며 “우리 지해를 구해주신 시민분들과 119구조대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이 각박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은 감사한 세상이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 국민의 시민의식에 감사함과 자부심을 느꼈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하씨의 말에서 답을 봤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 내미는 따뜻함은 어디에나 있고, 그래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 말입니다. 하씨는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앞으로 저도 세상을 둘러보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신경 쓰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영웅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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