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버린 공책 주워다 쓰는 가난한 여고생 울린 댓글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버린 공책 주워다 쓰는 가난한 여고생 울린 댓글

인천 장발장 부자에도 비판적 시선 존재… 여고생도 도움 사양한채 “댓글 보고 힘내겠다” 감사 인사만

입력 2019-12-16 04:00 수정 2019-12-17 14:58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인천 장발장 부자 뉴스를 보셨나요? 우유와 사과를 훔친 부자를 신고하는 대신 쌀을 주고 싶다는 마트 사장님부터 아침부터 굶은 부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짓던 경찰, 이런 과정을 지켜보다 20만원을 뽑아 무심히 던져주고 가버린 아저씨, 세상은 아주 따뜻했습니다. 이후에도 적지 않은 네티즌이 마트에 선결제하는 방식으로 인천 장발장 부자를 도왔다는 후기가 올라왔습니다.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도와주는 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가끔 나왔지만, 인천 장발장 부자에게 적어도 살아볼 만한 힘을 보태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더 많았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신경 써 준 그 따스한 마음을 느꼈을 테니까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 사는 게 힘에 부쳤던 예비 고3 여학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푸념에 많은 이들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낯 모르는 이들의 도움을 사양했지만 여고생은 힘들 때마다 낯선 이들의 댓글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힘이 나는 그 말들을 말입니다.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최근 올라온 사연의 주인공은 자신이 용돈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엄마한테 처음으로 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가 후회했던 일을 공유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한창 친구와 놀고 싶은 나이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기에 놀러 가자는 친구 제안을 늘 거절했습니다. 문제집과 학용품까지 적은 용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죠. 분리수거함에서 깨끗한 부분이 남아 있는 공책을 주워 쓴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친구 전체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친구에게 5000원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엄마에게 5000원만 더 달라고 했다가 혼이 나고 말았죠. ‘남이 버린 공책 주워다 쓰고, 친구들 모임에 돈이 없어 못 가는 걸 아느냐’고 엄마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집을 나왔는데, 엄마가 곧바로 쫓아 나와 1000원짜리 다섯 장을 주머니에 넣어주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우울한 마음에 학교에 빠지고 도서관에 왔다는 여고생의 푸념에 많은 이들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특히 여고생과 비슷하게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 직접 돕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학원을 운영한다는 30대 여성은 “학원에 볼펜 샤프 연습장 지우개 진짜 많고 교사용 문제집도 많아서 그냥 버린다. 다른 건 몰라도 공부 용품은 부담 없이 챙겨줄 수 있다. 꼭 댓글 남겨달라”고 했고, 한 여대생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많이 도울 순 없지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데 괜찮으면 연락 달라”며 이메일 주소를 남겼습니다.

“가짜 사연 아니냐”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그러냐”는 식의 부정적인 댓글을 의식해서인지 여고생은 처음 쓴 글의 내용을 지우고 감사 인사만 남겼습니다. “응원해주시고 위로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면서 “욕심이지만 댓글은 두고두고 보고 싶다. 힘들 때마다 찾아와서 의지 다지고 가겠다”며 고마워했습니다.

네티즌 댓글로 여고생 삶이 갑자기 달라질 리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내밀었던 그 따뜻한 손길들은 아이가 어른으로 커가는 동안 지쳐서 넘어질 때 뒤에서 일으켜 세워줄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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