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쵸비’ 정지훈 “팬들이 자부심 느낄만한 선수 되고 싶다”

국민일보

[인터뷰] ‘쵸비’ 정지훈 “팬들이 자부심 느낄만한 선수 되고 싶다”

입력 2019-12-26 14:56 수정 2019-12-26 14:57

‘쵸비’ 정지훈은 이달 초 국내 프로게임단 ‘드래곤X(DRX)’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는 기존 소속팀 그리핀과의 불공정 계약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자유 계약(FA) 선수 자격을 얻었다. FA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그리핀 사무실을 나가는 순간부터 그의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국내외 프로게임단들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총력전에 돌입한 것이다.

한 해외 팀에서는 30억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지훈은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제시한 DRX에 입단했다. 당장은 통장에 30억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국민일보가 정지훈을 만나 DRX 입단을 결심한 이유, 향후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

-FA 자격을 얻은 뒤 여러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다. DRX를 선택한 이유는?

“아직 해외 무대로 나가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또한 제가 FA 자격을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얻었다. 제게 이적 제의를 한 팀 중에는 멤버 구성을 거의 마무리했던 곳도 있었는데, 저 때문에 뒤늦게 새 팀을 알아봐야 할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DRX에는 친한 사람도 있어 마음이 기울었다.”

-DRX 선수들과 새 시즌을 준비해나가고 있다. 성적에 대한 자신감이 있나.

“팀원들과 빠르게 친해져 고무적이다. 말문이 트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흡수력이 뛰어나다. 프로게이머들은 자신의 게임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내가 못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다. DRX 팀원들은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수용하고, 더 발전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느덧 프로게이머가 된 지 3년째를 맞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올해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진출했을 때다. 여러 의미로 기억에 남는다. 제가 잘하는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 8강 진출에 그친 건 당연히 아쉽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 어딘지를 찾지 못했던 게 당시 패인이었다.”

-롤드컵에서 중국, 유럽 등 해외 강팀들과 맞붙었다. 인상 깊었던 맞수가 있었나.

“프로게이머마다 플레이 스타일이 있다. 각각의 유형 중에서 가장 정점에 가까운 선수만이 롤드컵에 온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도인비’ 김태상(펀플러스)이었다. 그의 스타일을 카피해 보기도 했는데, 다른 라인과의 호흡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해서 흉내 내기가 어렵더라. 선수마다 맞는 옷이 있는 것 같다. 김태상은 자신의 스타일을 잘 갈고 닦았다.”

-자신의 라인전 실력이 세계적으로도 통한다는 걸 입증한 대회이기도 했다.

“제가 라인전 대결에서 거의 다 우위를 점했던 점은 기뻤다. 이 게임을 주도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선 우선 라인전을 이겨야 한다. 앞으로는 라인전을 이겨 얻은 주도권의 활용법을 배우면 되겠다 싶었다.”

-왜 프로게이머가 되기로 결심했나.

“아마 중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제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던 중 프로게이머란 직업을 알게 됐다. 솔로 랭크 순위가 높아지자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형이 ‘지훈이는 프로게이머를 해야 한다’고 설득해줬다. 형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처음 프로게이머가 된 경위가 궁금하다. 카시오페아 장인이었다고 들었다.

“아마추어 시절엔 카시오페아만 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LoL이 아닌 ‘철권’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대 스킬을 피하고, 내 스킬을 맞추기만 했다. 김대호 감독님께서 자신의 게임 지식을 전수하면 제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먼저 연락을 주셨다.

저는 그리핀에서만 테스트를 봤고, 온라인 테스트를 생략했다. 조금 억울한 게, 팀에서 ‘한 번 테스트를 볼 생각이 있느냐’고 해서 ‘그렇다. 온라인 테스트를 먼저 보느냐’고 되물었는데 그게 ‘집에서 테스트 봐도 되나요?’라고 물어본 것으로 와전이 됐다. 그런데 어느새 제 이미지가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됐더라. 이 인터뷰를 통해 해명하고 싶다.”

-그리핀에서 준우승만 세 번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점이 부족했던 것 같은지.

“첫 결승 때는 아직 우승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두 번째 때는 준비한 전략이 먹혀들지 않았다. 세 번째 때는 밴픽을 잘못했다. 당시 제가 사일러스로 레넥톤을 상대했다. 유리한 구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감내할 만했다. 그런데 그 안 좋은 구도를 감수할 만큼 다른 데서 이득을 보지 못했다. 지금 다시 보니 밴픽을 아주 못했더라.

그러나 그 모든 걸 떠나서 우리가 우승할 만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승하지 못한 것이다.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우승도 따라올 것이다. 때가 되면.”

-e스포츠 외에도 관심 있게 보는 프로 스포츠가 있나.

“요즘은 복싱에 관심이 간다. 복싱이라는 종목은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예측하고, 피하고, 맞춰야 이긴다. LoL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복싱뿐만 아니라 이종격투기 등 격기 종목에 관심이 생겼다. 지금은 배울 때가 아니어서 마음을 접어두고 있다.”

-과거 인터뷰에서 자세 교정과 관련된 얘기를 몇 차례 했다.

“어느 날 제가 불편한 자세로 게임을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아마 서머 시즌 때였던 거 같다. 몸이 좀 앞으로 쏠려 있었다. 이후부터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경기에 임했더니 기량이 늘었다. 그전까지는 항상 첫 세트에 제 플레이를 맘껏 못 펼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비에 민감한 성격은 아닌데, 의자와 팔걸이 높이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지금까지 자신의 프로게이머 커리어에 점수를 매긴다면.

“커리어를 완성한 뒤에 점수를 매기고 싶다. 아직 커리어 진행 중 아닌가. 은퇴할 때가 되면 생각해보겠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생각해보면 힘든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걸 견디어내고, 또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제게는 과분한 일들이라 생각한다. 항상 감사하며 지내려고 한다.”

-프로게이머 중 롤 모델로 삼는 선수가 있나.

“없다. 저는 저로서 살아가려고 한다.”

-2020년의 DRX는 어떤 컬러의 팀을 추구하고 있는지.

“이대로 가면 ‘광대의 팀’이 될 것 같은데. 하하. 그래도 저는 지금 분위기 그대로 갔으면 좋겠다. 너무 재밌고, 즐겁고, 편하다. 성격이 모난 선수는 없다. 제가 운이 좋은가보다. 지금까지 프로게이머 생활하면서 모난 선수를 딱히 만나본 적이 없다.”

-앞으로의 각오와 계획이 궁금하다. 언제까지 프로게이머로 살아가고 싶나.

“프로게이머로서 팬들께 좋은 실력을 보여드리고 싶다. 아울러 팬들께서 ‘이 선수의 팬이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만한 선수가 되고 싶다. 프로게이머는 ‘못한다’는 평가를 듣기 직전까지만 하고 싶다. 정점을 찍고, 박수받을 때 떠나고 싶다. 직업을 떠나 누군가로부터 험담을 듣지 않게끔 멋지게 살아가려고 한다.

주변에서 응원해주시는 가족, 지인, 팬들께 항상 감사하다. 응원에 걸맞게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다. 프로게이머 데뷔 후 제 실력의 최고점은 이번 롤드컵 때였다. 당시 기량이 제가 가진 잠재력의 최대치였는지, 아니면 앞으로 더 끌어올릴 기량이 있을지 앞으로 알아보려 한다.”

윤민섭 이다니엘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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