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70주년, 이성열 예술감독 “여성 서사는 메가트렌드”

국민일보

국립극단 70주년, 이성열 예술감독 “여성 서사는 메가트렌드”

입력 2020-01-14 14:41 수정 2020-01-14 15:11
2017년부터 3년간 국립극단을 이끌어오고 있는 이성열 예술감독. 그는 “시대적 고민과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담은 극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작품을 매개로 관객과 창작자의 소통이 이뤄지는 건강한 순환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성열(58)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연극인이면서 실력 있는 행정가로 꼽힌다. 박근혜정부 시절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불붙었던 국립극단에 2017년 취임해 동분서주하며 조직을 다시금 궤도에 올렸다.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이 감독은 “2년간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아직 일궈야 할 것들이 많다”고 했다.

“여러 제도를 마련했다”는 말처럼 그가 취임한 후 국립극단은 새 틀을 갖춰나갔다. 국립극단 소속 세 극장인 명동예술극장과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을 각각 관객·작가·연출가 중심으로 단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희곡 제작 절차를 투명화한 온라인 상시 투고 시스템 ‘희곡우체통’을 비롯해 여러 창작 시스템도 다졌다. 특히 2020년은 국립극단이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전시 등 여러 기념사업 중에서도 굵직한 작품들이 이목을 끈다. 역시 창작극을 앞세웠는데, 이 감독이 연출하고 배삼식 작가가 쓴 ‘화전가’가 기념공연으로 2월 28일부터 선보인다.

올해 무대에 오르는 15개 정도의 희곡을 관통하는 특징 중 하나는 ‘젠더프리’다. 가령 1950년을 배경으로 전쟁과 좌우의 대립 등 현대사 질곡을 되돌아보는 화전가는 여배우 9명이 무대를 채운다. 이 감독은 “연극계에 여성 작가·연출진이 대단히 많다. 또 예술계가 주목하는 소수자성 중 ‘여성’은 대세인 주제”라며 “젠더프리 연극을 포함해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여러 작품도 그런 흐름 속에 있다”고 설명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그의 올해 목표 중 하나는 “국립극단을 국제 연극교류의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이 감독은 직접 해외를 오가며 러시아 박탄고프극장과 영국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대표작 ‘바냐 삼촌’(5월 28~30일)과 ‘말괄량이 길들이기’(6월 2~6일)를 초청했다. 벨기에 연출가 셀마 알루이는 맨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5월 중 세계초연으로 국내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 감독은 “해외 극단과의 공동 제작 등을 통해 우리 연극이 한층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어려운 점들도 많았다. 한 해 예산 약 120억 중 3분의 2 이상이 국고 지원인데, 몇 년 째 지원금액이 동결돼 빠듯하게 공연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70주년 맞이 북한 극단과의 교류 계획도 정세 등 여러 문제로 중단해야 했다. 연극계에선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미진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 감독은 “문체부가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지만, 초기 단계인 걸로 알고 있다”며 “여진이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관여 문제에 대해서는 “예술감독이 된 후 간섭은 전혀 없었다”며 “블랙리스트 사건을 겪으며 경각심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 감독은 올해 11월 9일로 임기를 마무리한다. 30년가량을 연극계에 몸담으며 극단 백수광부 대표 등을 지냈던 그는 예술감독에 취임하면서 ‘빵 공장장’이 되겠다고 했다. 시민들을 위한, 영양가 높고 맛 좋은 빵(연극)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생각은 변함없어요. 연극의 맥을 잇고, 문화의 빵을 구워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 그 간명하지만, 어려운 과제를 이뤄가는 과정인 거죠.”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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