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 농심 회장은 왜 맏형 故신격호 빈소 안갔을까

국민일보

신춘호 농심 회장은 왜 맏형 故신격호 빈소 안갔을까

입력 2020-01-22 08:04 수정 2020-01-22 10:16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99세의 일기로 지난 19일 타계한 후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들이 회자되고 있다. 풍선껌에서 시작해 롯데타워까지 올린 업적을 기리는 가하면 대물림 된 ‘형제의 난’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의 작고를 계기로 유독 형제간 갈등이 심했던 범롯데가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그룹을 국내 5대 재벌로 성장시킨 성공한 경영자로 불린다. 주요 재벌그룹 1세대 창업주 중 마지막까지 일선에서 활동했던 진취적인 사업가다. 다만 말년은 가족사로 얼룩졌다. 형제간 반목이나 아들간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지 못하고 떠났다.

신 명예회장 타계를 계기로 두 아들은 다시 만났다. 2015년부터 경영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다 부친 사망 직전까지 사이가 소원했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장례기간 내내 함께 빈소를 지켰다. 2018년 10월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국정농단·경영비리 재판 2심 선고 때 스친 이후 1년 3개월여 만이다.

롯데는 유독 ‘형제의 난’이 잦았다. 신 명예회장도 형제들과 여러 풍파를 겪었다. 5남 5녀 중 맏이인 그는 일본에서 껌으로 성공을 거둔 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8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서 가지를 뻗으며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동생들을 경영에 참여시켰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등이다.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마찰은 심해졌다. 동생들은 각자의 기업을 롯데에서 분가했다. 형을 등지고 자신의 길을 갔다.

푸르밀을 운영하는 신준호 회장은 가장 마지막까지 형 곁을 지켰다.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주요 계열사 대표 자리를 거치고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운영본부의 부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갈등은 1996년 부동산실명제가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신 명예회장과 신준호 회장의 이름으로 반반 나눠 갖고 있던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 소유권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치르게 됐고 형이 승리했다. 신준호 회장은 “아버지에게 직접 물려받았다”며 맞섰지만 형에게 땅을 내주게 됐다. 이 사태로 요직에서 밀려난 신준호 회장은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롯데그룹 측은 ‘롯데’라는 브랜드 사용을 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2년 후 사명을 지금의 푸르밀로 변경했다. 신준호 회장은 이후 신 명예회장과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신 명예회장과 수십년간 만나지 않을 만큼 갈등의 골이 가장 깊었던 동생으로 알려졌다. 일본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신 명예회장의 만류에도 라면사업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신춘호 회장은 1965년 롯데공업을 차리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고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고 롯데가에서 발을 뺐다. 이 사태로 형제는 의절했다. 신춘호 회장은 선친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맏형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을 보내 대신 빈소를 지키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끝내 형제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채 이어지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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