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물건을 훔치는 아이

국민일보

[이호분의 아이들세상]물건을 훔치는 아이

아이들 도벽, 도적적인 잣대로만 볼 일 아니다

입력 2020-01-22 13:20 수정 2020-01-22 16:26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H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다. 소유욕이 지나쳐 항상 뭔가를 사달라고 하고, 안되면 부모의 지갑, 동생의 저금통에서 돈을 슬쩍한다. 차츰 친구의 돈이나 물건을 가져왔다. 또 문방구나 완구점에서도 물건을 그냥 가져온다. 급기야 친구들을 선동하여 함께 물건을 훔치다가 경찰에 신고돼 부모가 경찰서에 출두까지 했다.

H의 부모는 매우 도덕적이고 분들이었다. 사리분별이 확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런데 H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친구의 학용품을 가져 온 적이 있었다. 너무 놀라고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는 속담이 생각났다. 이대로 두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를 것만 같아 불안했다.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에 매를 심하게 때리고 집에서 내쫒아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도 단단히 받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소문이 날까 두려워 친구에게 물건을 돌려주지는 못하였다. 부모로서도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6세 이전의 아이들이 이렇게 친구의 물건, 유치원의 용품을 허락 없이 가져오는 건 흔한 일이다. 아직 소유의 개념, 충동이나 욕구를 조절하는 힘이 부족해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생각없이 들고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가 부족한 부모가 너무 과잉 반응했던 거다. 물론 아이의 도덕성의 발달은 아이의 인지기능, 정서 사회적 발달 수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부모가 남의 물건, 공공장소의 물건을 슬쩍하는 등의 부도덕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하고 거짓말을 하는 등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무의식 중에 학습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H의 부모처럼 도덕성이 지나친 경우에도 많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H의 부모는 규범적이고 매사 일처리가 깔끔하신 편이라 회사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옳고 그름에 지나치게 매달려 사람을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만 평가하였다. 대신 정서적인 표현과 행동의 매우 적은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주어진 일을 하면 인정해 주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아이가 왜 그러는 지를 이해해 보려고 하질 않고 엄격하게 다스려 행동에 초점을 두고 고치려고만 하였다.

H는 또래 보다 자제력이나 욕구 조절하는 힘이 좀 부족한 아이로 행동이 연령에 비해 미숙하였다. 숙제 등도 제때 해놓는 적이 없었고, 공부도 잘하질 못했다. 게다가 간헐적으로 도벽까지 있으니 부모의 인정을 받는 일이 드물었다. 반면 동생은 부모와 비슷한 기질로 똑 부러지게 행동하고 반듯한 아이여서 동생과 비교 받는 일이 많았다.

반면 H는 매우 감성적이 풍부하고 정서 표현이 많고 창의적이고 애교도 많은 아이였지만 부모는 이런 장점을 장점으로 보아 주질 않았던 거다. 가족 중에 미운 오리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부모의 인정도 못 받고 야단만 맞았으며, 동생 앞에서 수치스러운 경험을 반복해서 받은 H는 우울하고 공허 하였다. 그래서 물건을 사달라는 요구도 많고 물건에 집착하여 공허감을 채우려 했다. 이런 아이의 행동은 부모를 지치게 했으며 ‘요구가 많고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라는 딱지를 H에게 붙여 버리게 된다. 그럴수록 아이의 행동도 점점 심해져 남의 물건을 상습적으로 가져 오는 일까지 하는 거였다.

아이들의 도벽은 도적적인 잣대로만 볼일은 아니다. 아이 마음에 화가 있는지, 억울함이 있는지, 슬프거나 우울한지, 불안함이 있는 지 사랑이나 관심이, 칭찬이나 인정이 필요한지도 알아 볼 일이다.

아이들이 6세 이전에는 남의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 가연이의 가정은 재혼가정이었다. 가연이가 두 살 때 쯤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그 전부터 투병 때문에 가연이는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가연이는 할머니집에서 키워졌지만 식당을 하는 할머니 역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여력이 없었다.

현재의 새엄마를 만난 것은 가연이가 6세 때. 새엄마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의 비뚤어진 행동이 반복되자 지쳤다고 했다. 또 가연이 동생이 생긴 후부터는 마음이 더 멀어졌다고도 했다.

치료 초기에 가연이는 눈맞춤 자체를 무척 부담스러워하고,단 둘이 대화를 하는 것조차 어색해하며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고 편안해지면서 가연이는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행복한 아기 동물과 동물 가족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아이가 살고 있는 부유하고 멋진 집을 만들어 놓은 후 ‘친구의 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족 내에서 충족되지 못한 부분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것이리라.

한동안 가연이는 엄마로부터 돌봄을 받는 ‘아기’를 계속 재현해냈다. 우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정성껏 아기를 돌보는 놀이를 반복했다. 그리고 드디어 어느날 ‘아기가 이젠 혼자 걸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극복할 자신이 생긴 모양이었다. 이후 가연이는 놀이에서건 생활에서건 조금씩 나이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도벽이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현하기보다 마음 속에 ‘다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직접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가연이의 정신적 상처가 아직 다 치료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지나온 성장 과정을 반복 재현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하나씩 자신에게 결핍됐던 부분들을 채워나가며 자기의 정신적 상흔들을 치료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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