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명만이라도 남겨달라” 윤석열 간청 끝내 뭉갠 추미애

국민일보

“몇 명만이라도 남겨달라” 윤석열 간청 끝내 뭉갠 추미애

입력 2020-01-23 16:28
지난해 7월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취임사를 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모습. 윤성호 기자

검찰은 법무부가 23일 단행한 고검검사(차장·부장검사)급 인사를 지난 8일 검사장급 ‘대거 좌천’에 이은 ‘2차 물갈이’로 받아들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까지 며칠간 실무선을 통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중간간부급 인사 관련 의견을 전달했는데, 애초 “대검찰청 중간간부 전원을 유임해 달라”던 입장에서 “총장 직무수행을 보좌하는데 필수적인 ‘몇명’은 남겨 달라”는 입장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추 장관은 윤 총장의 요청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윤 총장은 법무부에 마지막으로 “인사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 수사팀의 부장검사들이 유임되긴 했지만, 검찰은 ‘구색 맞추기’로 보고 있다. 윤 총장의 ‘수족’과 같던 중간간부들, 주요 사건을 지휘해온 일선청 차장검사들이 남김없이 교체되면서 향후 수사와 공소유지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2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총장은 대검 핵심 중간간부들의 인사이동을 놓고 마지막까지 법무부와 줄다리기를 했다. 윤 총장이 ‘전원 유임’에서 ‘수 명 유임’으로 물러서면서까지 지키려 한 핵심 측근 중에는 김유철(51·사법연수원 29기) 수사정보정책관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정책관은 윤 총장의 취임 당시 ‘공정경쟁’ 철학 수립에도 관여했는데, 이번에 원주지청장으로 전보됐다. ‘암행어사’ 역할을 맡아온 신승희(49·30기) 감찰1과장은 인천지검 형사2부장으로, 정희도(54·31기) 감찰2과장은 청주지검 형사2부장으로 전보됐다.

검찰의 양 날개인 ‘특별수사’와 ‘공안수사’의 허리급 간부들도 대부분 바뀌었다. 양석조(47·29기)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 휘하에 있던 엄희준(47·32기) 수사지휘과장은 수원지검 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으로 옮겼다. 임현(51·28기) 공공수사정책관과 김성훈(45·30기) 공안수사지원과장, 이희동(49·32기) 선거수사지원과장이 모두 일선 검찰청으로 이동했다. 청와대 전현직 인사들을 겨냥한 반부패수사와 공공수사가 활발히 진행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들은 인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검찰 관계자 다수가 지적했다.

윤 총장의 의견이 추 장관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장면은 검찰 조직에 큰 부작용을 남길 전망이다. 정권 수사를 펼치면 반드시 인사 불이익을 입게 된다는 메시지를 줬고, 나아가 총장의 조직 통솔 문제로까지 비화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검사들의 입장에서는 총장이 장관과 인사를 협의하는 것을 상당히 크게 받아들여 왔다”며 “2차례 연속 총장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앞으로는 총장을 따르는 검사가 줄어들 듯하다”고 말했다. 새로 부임하는 중간간부들 역시 이 같은 역학관계를 염두에 둘 것이라고 법조계는 관측한다.

당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부터가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윤 총장과 수사팀의 기소 의견을 며칠동안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인사안을 확인한 현직 부장검사는 “앞으로 주요 수사팀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며 “새로 온 차장검사들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번 인사가 시사하는 바는 ‘6개월마다 전부 갈아 치울 수 있다’는 메시지”라며 “정권이 검사 인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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