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동생분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 해 영광입니다”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동생분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 해 영광입니다”

입력 2020-01-24 05:00 수정 2020-01-24 05:00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동생분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동생을 잃은 오빠는 승무원의 이 한 마디에 무너졌습니다. 유난히 여행을 좋아했던 동생. 그런 동생의 유골함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한국 도착 전까지는 평정심을 유지하리라 다짐했지만, 따스함이 담긴 위로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승무원의 배려에 “정말 감사했다”는 홍모(37)씨. 그의 동의를 얻어 사연을 전합니다.

홍씨는 약 두 달 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베트남 다낭에서 생활하는 동생이 중증 뎅기열에 걸려 위독하다는 겁니다. 그는 곧장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고, 다음 날 오전 현지에서 동생과 만났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불과 수십여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늘 부모님과 오빠를 챙겼던 동생. 소박한 선물에 기뻐하고, 여행을 사랑했던 아이. 해외여행을 갈 때만 타는 비행기가 참 좋다던 동생은 끝내 타국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무사할 거라는 희망을 안고 베트남으로 향했던 홍씨는 크게 좌절했다고 합니다.

홍씨는 영사관과 한인교회의 도움을 받아 현지에서 동생의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까지 마쳤습니다. 또, 현지의 한 교민이 돌아갈 항공권 예매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줬고, 항공사 측에 미리 귀띔도 했다고 합니다. 동생의 유골함과 함께할 탑승객이라고요.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홍씨는 항공사 직원에게 “유골함과 함께 탈 예정”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러자 한 여성 직원이 다가와 “미리 연락을 받았다”며 “조금이라도 편히 갈 수 있게 두 자리를 준비했다”고 안내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였죠.

그런데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때 불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안검색대에 있던 현지인 직원들이 신기한 광경 보듯 유골함을 구경하는 등 무례하게 행동했습니다. 홍씨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동생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겨우 참았다”고 말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탑승게이트. 유골함을 품에 안고 기다리는 데, 또다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항공사 직원이 다가와 “동생분과 함께 가시죠? 먼저 체크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먼저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앞서 “두 자리를 준비했다”고 말했던 직원이 다시 와서는 좌석까지 안내를 도왔습니다. 홍시는 이동하면서 해당 직원과 짧은 대화를 나눴고, 그때 들은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모든 크루원들에게 이야기는 해뒀습니다. 불편하신 사항은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고요. 동생분의 마지막 비행을 저희 항공이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영광입니다.”

홍씨는 “정말 감사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면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때 그 모든 설움이 녹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비행기 좌석까지 안내해주시고 다시 한번 승무원들에게 제 편의를 봐달라는 말을 전하고 가시는 걸 봤다”며 “힘든 마음을 함께 위로해주셔서 기다리던 부모님 품에 동생을 안겨드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과 함께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비행, 그리고 동생의 마지막 비행을 편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홍씨의 일화는 해당 항공사 측에 전달됐다고 합니다. 항공사 측은 곧 홍씨를 도운 승무원을 포상할 예정입니다. 참 다행이죠. 제 몫을 다한 이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간다는 게요.

홍씨는 해당 항공사 관계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직원분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그저 동생의 유골과 함께 돌아오는 것뿐이었겠지만, 그 말 덕분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동생과 함께 온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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