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KT, 한국 e스포츠 발자취 남긴 자부심 있다”

국민일보

[인터뷰] “SKT, 한국 e스포츠 발자취 남긴 자부심 있다”

13여년만에 e스포츠 업계 떠나는 오경식 전 T1 단장의 소회

입력 2020-01-24 12:40
오경식 SK텔레콤 스포츠마케팅 그룹장. 최현규 기자

13여 년을 e스포츠계에서 활동한 오경식(사진) SK텔레콤 스포츠마케팅 그룹장이 업계를 떠나며 “정든 곳을 떠나자니 시원섭섭하고,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SK텔레콤이 컴캐스트와 조인트벤처 ‘T1’을 설립하면서 SK 스포츠마케팅을 총괄해온 오 그룹장은 T1 단장직을 내려놓게 됐다. 2007년 T1 사무국장으로 처음 e스포츠 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2018년 1월 임원으로 승진해 단장이 됐고, 지난해 5월에는 SK 나이츠(농구) 단장을 겸임했다. 현재는 농구, 수영, 펜싱, 골프 등 일반 스포츠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SKT타워 사무실에서 오 그룹장을 만나 e스포츠계를 떠나는 소회를 들었다.

-‘스타크래프트’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국내 e스포츠에서 오랜 시간 일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처음 e스포츠에 입문한 2007년에는 스타크래프트1 중심으로 한참 e스포츠에 대한 붐이 일어났다. 실질적으로 2004년에 프로대회가 출범하고 2005년에 대기업들이 들어오면서 발돋움을 넘어 활성화되는 단계였다. 2010년 전후로 해서 블리자드와 지식재산권 분쟁이 나면서 e스포츠가 한풀 꺾였으나 2013년에 다행히 LoL이 흥행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랜 시간 업계에 있었던 입장에서, e스포츠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안타깝게 와 닿는다. 응어리로 남았는데, 마무리 못하고 e스포츠판을 떠나는 것 같아서 후회된다. SK텔레콤 T1이 한국 e스포츠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은 자부심이 있다. 2005년에 CEO가 협회장을 맡으면서 회사 차원에서 e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보람된다. 안타까움과 보람이 겹치는 그런 소회를 말씀드린다.”

-아쉬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북미나 중국 등 커다란 자본에 의해서 해외 e스포츠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한국 시장에선 그러지 못했다. T1이 선도하는 입장이었다고 보는데,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지난해 10월 T1이 종합 게임 컴퍼니로 거듭났다. 만약 4~5년 전에 그런 계기가 있었다면 e스포츠 주도권이 해외에 넘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T1이 좀 더 빠르게 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어쨌든 13여 년의 시간 동안 업계에 있으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참 많다. T1이 2005~2006년에 오버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해서 4번 연속 우승을 하고 굉장한 성과를 냈다. 그런데 직후 세대교체를 못 했다. 제가 업무를 맡게 될 즈음인 2006년 말에 10개 게임단 중에 10등을 했다. 10등을 한 팀을 맡아서 체질 개선에 무엇보다 집중했다. 그리고 부산 광안리에서 박용운 감독과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 굉장한 환희를 느꼈다.
가장 최근 환희의 순간은 2015년 독일 벤츠 아레나에서 열린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 때다. 그때 T1은 최고 전성기였다. 그래서인지 현지 관중이 상대 팀(쿠 타이거즈)을 한목소리로 응원하더라.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우승해서 더 기뻤다.
잊을 수 없는 아픈 순간도 있었다. 2016년 말이었던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 팀을 접는다고 할 때다. 선수들하고 화곡동의 한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이별 인사를 하는데, 그때가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이다. 2007년에 T1을 맡아서 10년을 함께했는데, 헤어지는 상황이 되니 아쉬움이 컸다.”

-그때 이별한 선수들과는 연락을 하시는지.

“당시 헤어지긴 했지만,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후 여러 번 시도했다. 임요환 감독이라든지 정명훈이나 어윤수 등을 주축으로 만나려 했는데 각자 일정이 있다 보니 시간이 잘 안 맞았다. 2016년에 헤어지고 만난 건 한 번 정도였다. 이후 개인적으로 만나서 식사를 하고 그런 게 있었다. 얼마 전 ‘TEN’이라는 행사를 한다고 박용운 감독한테 연락이 와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때 하필 저희 회사 임원 연수 일정과 겹쳤다. 정말 아쉬웠다. 올해 상반기 중 일정이 되면 만나고 싶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가장 애착이 가는 선수는 누구인지.

“종목 둘로 나눠 꼽자면 일단 스타크래프트는 정명훈이다. 정명훈은 연습생 때부터 T1에서 활동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선수의 유형은 노력형과 천재형으로 나뉜다. 가령 김택용은 천재형이다. 연습을 정말 많이 해서 실력을 올리는 선수도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가 결합된 선수가 정명훈이었다. 자기만의 빌드가 있고 자기만의 전술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정명훈이 가장 애착이 갔다. 계속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더 친근하다. 끝까지 e스포츠 끈을 놓지 않고 새로운 걸 찾아서 도전하는 모습을 정말 높이 산다.
LoL에서 ‘페이커’ 이상혁에 대한 애착도 매우 크다. 상혁이가 해외, 특히 중국에 갈 기회가 정말 많았다. 연봉협상을 할 때마다 해외에서 상상 이상의 연봉을 제시했다. 하지만 본인이 한국 e스포츠의 상징이고, 한국 e스포츠를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남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이상적이고, 어린 나이에도 생각이 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반 팬들이 보는 것과 제가 보는 것은 상당히 비슷할 거다. 성숙하고 어른스럽다는 점이다. 잘됐으면 하는 선수다.”

-단장 직을 내려놓기 전 성과라면 2년 전 시작한 아카데미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스토브리그에서 선수가 게임단보다 협상력이 더 강해졌다. 대부분 선수들이 단기 계약이고 풀이 작다 보니깐 선수가 더 말할 수 있는 게 많다. 그걸 대비해서 송종호 사무국장이 2년 전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선수를 키웠다. ‘칸’이라든가 ‘클리드’가 떠났지만 다행히 2년 전부터 육성한 선수들이 잘 성장해줬다. 적잖은 준비 기간이 걸렸지만 결실을 보았다. 앞으로 더 잘 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일반 프로 스포츠의 관점에서 e스포츠를 바라봤을 때 느껴지는 바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e스포츠와 오프라인 스포츠는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거다. 저는 거리낌 없이 근본적인 베이스는 똑같다고 답한다. 저 역시 오프라인 스포츠를 하다가 e스포츠를 맡으면 무언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선수를 발굴해서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충분히 경기력이 나오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틀은 똑같았다. 같은 선상에서 팀의 운영 시스템이라든지 지원 시스템을 맞춰 나가는 게 맞다.

-e스포츠계가 과거에 비해 어떤 부분이 달라졌다고 보는지.

“e스포츠 프로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2004~2005년에 비해 지금은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다. 제 기억으로 연봉 등 선수단 운영 예산이 당시보다 지금이 5~6배 커졌다. 예산이 이만큼 늘어난 건 굉장히 커진 거다. 하지만 시장의 발전 속도나 규모보다 그걸 뒷받침할 시스템이 상당히 낙후되어있다. 농구, 야구 등 프로 스포츠는 시장이 커지면서 시스템과 규정을 갖추고 협회도 점점 역할이 커지면서 성장했다. e스포츠 같은 경우에 시간이 적잖게 지났는데 오히려 퇴보한 측면이 있다. 눈에 띄는 나아진 게 없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에서 운영하는 규모 있는 팀이 더 많이 생겨야 되지 않나 싶다. 현재 내로라하는 e스포츠 게임단도 운영 인력 포함해서 2~3명이 뒷받침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나아질 수 없다. 추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사건으로 협회의 영향력이나 팀의 권리가 많이 축소된 것 같다. 시기적으로 상당히 아쉽다.”


-협회의 영향력이 커져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저는 게임 개발사나 방송사가 주체가 되어서 판을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LoL 같은 경우 협의체가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주체가 함께 가지 않는다. 룰과 규정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협회의 영향력이 줄면서 동력을 상실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최근에 눈에 보이는 그리핀 사건이나 선수 임금 체불은 게임 개발사나 방송사가 e스포츠 주체가 되다 보니깐 생긴 문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선수들의 가치를 증진하고 선수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런 걸 해야 할 협회의 기능이 오히려 다운된 게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중립적인 협회의 역할이 건전하게 커져야 한다. 협회는 방송사나 게임 개발사에 비해 비영리집단인 데다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중립적인, 순수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곳이다. 때문에 제도나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고,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협회의 기능이 오히려 축소되고 게임사에서 도맡아 하는 상황이다. 바람직하게 가기 위해서는 협회 역할이 커져야 한다.
또 한 가지, 게임단은 사무국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금처럼 2~3명으로 운영을 하다 보면 단순히 지원하는 업무에 한정될 뿐이지 마케팅이라든지 새로운 비즈모델을 개발한다든지 하는 여력이 없다. e스포츠는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후진적인 시스템을 고수하는 건 향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핀 사태의 경우 게임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e스포츠 발전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데 상업적 마인드가 지나치게 들어갔다. 그렇다 보니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고 재화의 가치로 여기게 됐다. 이 외에도 게임단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e스포츠 발전을 위한 노력보다 시드권을 판다든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마인드로 접근하면서 e스포츠 발전에 독이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e스포츠 주체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성원 모두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협회를 자꾸 말씀드리는 건 이해관계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없어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게 현재 한국 e스포츠를 대변하는 상태 아닌가 생각한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북미, 중국, 유럽 등의 e스포츠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제3세계에서 태동하는 e스포츠 또한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e스포츠의 전망에 대해 얘기해 달라.

“미국 NBA나 MLB, NFL에서 e스포츠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스포츠 마케팅은 이미 몇십 년 앞서 있다. 그런 여건 속에서 그들이 e스포츠를 보는 시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앞서가는 그들이 가능성을 본다는 건 e스포츠가 NBA, NFL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이나 미국의 수많은 프로 스포츠팀들이 e스포츠에 관심을 두고 투자를 하고 있다. 굉장한 시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눈여겨 봐야 할 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움직임이다. 이들은 기성 스포츠의 팬층이 노령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제 젊은 층을 흡수하기 위해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로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한국 스포츠 시장의 한계다. 한국 e스포츠 역시 토대가 없다 보니 제대로 성장을 못 했다. 미국과 유럽은 기성 스포츠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e스포츠의 성장세가 빨랐다. 앞으로도 세계 e스포츠는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다.”


-한국 e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한국의 e스포츠가 점점 인큐베이팅만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사실 한국 시장을 봐서는 더 큰 성장세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프로야구조차도 위축기에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LoL 국제대회를 제패하지 못했는데, 그게 더 심화되면 4류로 추락할 수 있다. 스포츠 마케팅 시장을 통한 성장에 한계가 있다면 선수들이 각성해서 실력으로 최고봉에 간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 그러면 더 큰 침체에 빠져 그 피해는 선수들에게 갈 것이다.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경기력만큼은 최고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업계에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최근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박준규 대표가 별세한 것에 대해 상당히 가슴이 아프다. 많이 만나진 않았지만 e스포츠에 대해 헌신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신 분이다.
한국 e스포츠는 계속 위축되고 있다. 지금이 한국 e스포츠의 큰 위기인 것 같다. 업계 관계자 모두가 심각성을 느끼고 한국 e스포츠 발전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발 떠나 있으니깐, 안에 있을 때는 못 느꼈던 것들이 보인다. 지금 협회, 선수, 게임단 주체들이 모두 제각각 자기 살길만 찾고 있다. 하나로 뭉치는 게 아니라 분열을 하고 있다. 정말 큰 위기가 한번 오지 않겠나 싶다. 나도 온전히 해내지 못했지만, 이해 당사자가 좀더 순수한 마음으로 애써줬으면 좋겠다는 게 떠나는 저의 마지막 소회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