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위 차례상’ 앞에서 눈물 흘린 문중원 기수의 아내

국민일보

‘거리 위 차례상’ 앞에서 눈물 흘린 문중원 기수의 아내

입력 2020-01-26 09:19

“설 전에 보내주고 싶었는데…”
“명절인데 애들한테 가지 못하는 게 마음 아프다”

지난해 11월 29일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마장(馬房·마구간) 운영 등을 고발한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故) 문중원 기수의 아내 오은주가 명절에도 아이들에게 가지 못하는 처지가 마음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오씨는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와 ‘민주 노동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노조본부’ 등과 함께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이날은 문중원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58일째이자 고인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서울로 온 지 30일째 되는 날이다.


이들은 설 전 장례를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거리에서 설을 맞게 됐다. 차례 음식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함께 마련했다. 꿀잠 활동가들은 25일 오전 9시 30분 음식을 싣고 농성장을 방문했다.

“설 전에 장례를 치르고 남편을 차가운 길에서 옮겨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었다”고 한 오씨는 “그러나 나의 마음이 부족한지 높은 곳까지 닿질 못했나 보다.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 흐르는 눈물을 다시 한번 닦아내고 딛고 일어서겠다. 황금가면을 쓰고 철면피들이 모여있는 마사회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오씨는 “다들 마사회가 강한 조직이라고 한다. 그러나 겁나지 않는다.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고 충분한 힘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다짐했다.

최준식 시민대책위원장은 “흩어졌던 가족도 모이는 설날에 우리는 문중원씨의 시신을 곁에 둔 채 침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어젯밤 12시까지 마사회와 교섭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를 수 없었고, 설날이라도 교섭을 이어나가자고 요구했지만 끝내 불발됐다”고 말했다.

길 위에서 명절을 맞으며 공동 차례를 지낸 이들은 문중원씨의 유가족 외에도 일진다이아몬드지회, 기아차비정규직지회, 기륭전자분회, 비정규직없는 세상, 현장에서 숨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씨 누나 도현씨,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이 포함됐다.

숨진 문씨의 유서엔 마사회 내 마사대부 심사위원회의 부정심사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 담겼다. 기수였던 문씨는 2015년 조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마사대부 심사만 통과하면 마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심사에서 계속 떨어져 5년간 마사대부 업무를 하지 못했다.

마방을 배정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마사대부’는 조교사 면허 보유자 중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시민대책위는 2월 초 부산, 과천, 제주 등에서 ‘죽음의 경주를 멈추도록’ 마사회에 촉구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

"